[미술품 상속세 점검]가치평가 제도 ‘표준화’ 과세 신뢰성 높인다④정부 주도 가치평가 자격·양식·절차 '표준화' 필요…교육과정은 민간 자율규제 유지
이민호 기자공개 2021-05-12 13:54:42
[편집자주]
‘이건희 컬렉션’이 삼성가(家) 상속과정에서 이슈화되면서 미술품 상속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알려진대로 국가와 지자체에 기증되는 작품 외 삼성문화재단 출연이나 유족 상속분이 여전히 남아 있어 미술품 상속 이슈는 현재 진행형이다. 더벨은 현재의 미술품 상속제도를 살펴보고 그 근간이 되는 시가감정의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10일 15: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술품 상속재산가액 산출의 핵심인 가치평가(시가감정)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제도 표준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현재 민간협회별로 자격요건, 감정서 양식, 감정절차이 달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다. 제도 표준화 이후에는 민간협회가 대학과 연계해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도제식 인력육성 한계…개론 수준 단기교육 의존
미술품 감정가액은 현행 상속세법에서 상속세율을 매기는 재산가액이 되기 때문에 정확한 산출이 중요하다. 감정가액이 낮게 책정되면 그만큼 상속세도 적게 납부하기 때문에 공정성 논란에 직면할 수 있다. 미술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물납제 도입을 위해서도 가치평가 신뢰성 제고가 요구된다. 물납제는 금전 대신 미술품 납부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만큼 감정가액이 높게 책정되면 납세자는 세금 부담을 덜게 돼 과세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국내 미술품 감정평가는 복수의 민간주체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1980년대 한국화랑협회가 미술품감정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비슷한 시기 한국고미술협회도 한국고미술품감정위원회를 설립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출범했고 최근에는 주식회사 형태의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이외에 서울옥션과 케이옥션 등 경매회사도 자체 감정평가 조직을 갖추고 있다.
국내 미술품 감정평가 인력은 현재도 대부분 도제식으로 육성되고 있다. 도제식 교육 특성상 인력 저변 확대가 어렵다. 이들 소수인력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시장이 작동하면서 감정 과정의 투명성 결여와 결과의 신뢰성 부족이 문제시돼왔다.
공공기관이나 민간협회 차원에서 미술품 감정평가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민간협회의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런 교육과정은 개론 수준의 단기과정에 그쳤으며 위작 여부를 판단하는 진위감정에만 치중한 한계를 보였다. 2010년대 중반에는 미국감정평가사협회(AAA)나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s Institute of Art)와 협력해 시가감정으로의 확장도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해외 감정평가 시장의 경우에도 국내처럼 민간협회 중심의 자율규제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 미술품이 주식이나 부동산과 달리 작품 기법이나 재료 등에서 세분화돼있고 각 작품마다 고유성을 지니면서 감정평가에도 일률적인 국가자격이나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운 특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주도 표준화 우선…민간협회-대학 연계 양성과정 필요
국내와 달리 선진국들은 정부가 가치평가 제도에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을 지정 또는 운영하고 있다. 해당 공공기관은 전문인력 자격기준과 윤리규정의 표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을 정하면서 관련 민간협회들의 이해관계도 조정한다. 미술품 가치평가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미국이 가치평가재단(TAF)을 두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TAF는 전문인력 자격요건인 표준가치평가실무기준(USPAP)을 인증하고 민간협회들을 관리·감독한다.
국내에도 이런 역할을 담당할 공공기관 출범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민간에서 우선 발달해 일정 수준까지 올라온 진위감정과 달리 국내시장의 약점으로 제시되고 있는 시가감정은 민간에서조차 제대로 된 체계가 마련돼있지 않은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재단 형태의 공공기관을 출범시키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힌다.
공공기관 설치 이후에는 미국 USPAP과 같은 한국형 표준 제정이 요구된다. 현재 민간협회별로 다른 전문인력 자격요건, 감정서 양식, 감정절차 등을 표준화하는 작업이다. 미국 세무당국(IRS)의 경우 미술품 상속재산가액 산출을 담당하는 감정평가사에 USPAP 취득을 최소 자격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표준 감정서는 상속재산가액 산출 외에 담보가치 책정 등 금융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민간협회는 공공기관이 제정한 표준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교육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민간협회가 강사진과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대학이 학생선발이나 학위수여 등 교육 인프라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1~2년 기간의 수료 또는 학위 과정을 두고 미국 USPAP과 같은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미술업계는 표준 제정과 함께 가치평가에 필요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정평가에는 전문인력의 주관적 판단이 일부 작용하지만 작가·작품·소재·주제별 거래기록 등 객관적 지표가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경매회사나 갤러리에서의 거래 데이터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해외 크리스티나 소더비의 경우처럼 방대한 누적 데이터를 보유해 거래추이를 대표할 수 있는 지배적 시장주체도 없는 상황이다.
미술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공공기관을 지정 또는 설립해 가치평가 체계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후 민간이 표준에 부합하도록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마련하면 전문분야별 다양성 확보에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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