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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록펠러재단과 대학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1-07-15 08:01:19

이 기사는 2021년 07월 15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부호 중 한 사람이었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가 설립한 재단이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이다. 록펠러의 평생 멘토였던 침례교 목사 프레더릭 게이츠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게이츠는 록펠러의 재산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자 록펠러에게 자손들이 그 재산을 탕진하거나 그 재산에 취할 위험이 있으니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자선단체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충고를 받아들인 록펠러는 1909년에 뉴저지 스탠다드오일 주식 7만3000주를 출연 약정했다. 1913년 5월에 록펠러를 초대 이사장으로 하는 재단이 설립되었다. 카네기재단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재단이 탄생한 것이다. 록펠러가 재단에 낸 돈은 모두 약 2억5000만 달러다.

재단의 첫 사업은 미국적십자사에 대한 10만 달러 지원이었다. 적십자사는 그 돈으로 워싱턴에 본부 건물을 장만했다. 초기에 록펠러재단은 존스홉킨스와 하버드를 포함 미국과 해외의 보건·공중건강 교육·연구기관을 주로 지원했다. 지금까지 록펠러재단이 다양한 사업에 지원한 총액은 약 140억 달러로 추산된다.

록펠러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전을 건네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 습관은 일종의 유머이기도 해서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랬다고 한다. 10센트, 5센트 동전이었지만 세계 제일의 부자가 주는 것이라 금전적 행운의 표시 같았을 것이다. 록펠러는 부호가 되기 훨씬 전, 청년 시절부터 사회 기부를 했던 사람이다. 열여섯살 때 수입의 6%를 기부했다. 스무살 때는 10%를 넘었다. 대부분 교회에 한 기부다. 록펠러는 매주 일요일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고 여행을 하면서도 주로 흑인교회를 찾았다. 그러나 록펠러는 항상 효과적으로 사업을 할 능력이 있는 기부처를 찾았고 신중한 기금관리를 기부의 조건으로 달았다고 한다.

록펠러는 대학의 건립에도 기여했다. 바로 시카고대학교다. 미국 침례교 교육협회와 역시 침례교도였던 록펠러가 각각 40만, 60만 달러를 내서 1890년에 출범했다. 시카고의 유통업자 마셜 필드는 학교 부지를 기부해 동참했고 그 외 여러 명의 독지가들이 힘을 보탰다. 시카고대학은 초기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서 신학대학이 가장 먼저 설립되었다. 설립 후 록펠러는 무려 8천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대학의 이름이 록펠러의 이름을 따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다. 록펠러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투자가 시카고대학교를 지원한 것이라고 했다. 시카고대학교는 2020년 현재 10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숫자다. 특히 경제학과 물리학에서 수상자들이 많다.

록펠러는 시카고대 외에도 해외의 침례교계 대학들도 지원했다. 1903년에 록펠러는 고등교육과 의과대학을 지원할 목적으로 특수한 기구도 만들었다(General Education Board). 특히 남부의 흑인 교육기관을 중점 지원했다. 하버드, 예일, 콜럼비아, 브라운 등 대학들도 이 기구의 지원을 받았다. 록펠러 패밀리가 이 기구에 내놓은 기금은 총 1억8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기구는 기금을 다 소진하고 1964년에 해산했다.

록펠러의 이름을 딴 대학도 있다. 록펠러의 외아들 록펠러 2세(1874~1960)가 뉴욕 맨해튼에 설립한 록펠러대학이다. 록펠러 2세는 맨해튼의 록펠러센터를 포함해서 부동산 개발로 유명했던 기업인이다. 사회사업에도 진력했는데 생애 통산 5억 4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주로 교육기관이었고 록펠러대학은 그중 하나다. 가족들에게는 2억 4000만 달러를 남겼다.

록펠러대학은 설립 시에는 미국 최초의 바이오의학연구소인 록펠러의학연구소였다. 이 대학은 생명과학 분야만 다루는 초소형 대학원대학이다. 학생 수가 230명 정도이고 교수는 80명 내외다. 그 80명 중에 미국 학술원 회원 37명, 미국 의학원 회원 17명이 포함되어 있다. 노벨상 수상자는 38명을 배출했다. 이 작은 대학이 23억 달러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록펠러의 막내 손자 데이빗 록펠러(1915~2017)가 오랫동안 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스펠맨대학(Spelman College)은 록펠러 부인의 이름을 딴 대학이다. 침례교계 흑인여자대학으로 잘 알려져있다. 미셸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도 졸업식 연사로 나갔다. 1881년에 세워졌는데 록펠러는 1884년에 이 학교를 방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대학은 당시 교수 16명, 학생 600명으로 주위의 흑인 커뮤니티와 교회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었다. 록펠러는 대학의 부채를 일거에 다 청산해 주었다. 인종차별철폐주의자들이었던 록펠러 처가 식구들도 대학을 지원했고 학교 이름이 스펠맨으로 바뀌었다. 1886년에는 록펠러홀이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교정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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