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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판결문 뜯어보기]"누구의 승리 아니다" 재판부, 금융사·당국 모두 '경종'①은행권 내부통제 부실 사례 다수 적시…당국 브레이크, 금융사 전체 경고음

김현정 기자공개 2021-09-06 07:14:49

[편집자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DLF 1심 승소 파장이 상당하다. 비슷한 당국 징계를 기다리고 있던 금융사와 CEO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내놓은 판결문을 보면 당사자들이 마냥 손뼉칠 상황은 아닌 듯하다. 74페이지에 이르는 손 회장 관련 판결문에는 금융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다수 담겨 있었다. 더벨은 판결문을 입수해 행간에 들어있는 의미와 되새겨야 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9월 01일 16: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DLF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 심의를 내린 지 576일 만에 당시 처분이 부당했다는 판결이 나왔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측은 일년 반 넘는 다툼 끝에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난 금융당국의 무리한 처분이라는 재판부 판결을 얻어냈다.

다만 행정법원의 이번 판결문을 살펴보면 손 회장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도 함께 읽힌다. 특히 재판부는 이번 사안에 대한 주요 쟁점 판단 과정을 판결문에 적시하며 우리은행 내부통제 시스템 운영의 실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금융당국의 재량권을 넘어선 막무가내식 처분은 피하면서도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의 미비점에 대해 따끔한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는 평이다. 더불어 보다 실효성 있는 규제가 가능하도록 법령과 고시를 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입법 미비점도 함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576일만에 끝난 줄다리기, 당국 제재 뒤집히다

지난해 1월 30일 오후 9시, 금감원은 DLF 사태 3차 제재심 끝에 우리은행에는 3개월 ‘업무 일부 정지’를 손 회장에게는 ‘문책경고’를 내렸다. 금감원은 CEO가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시켰기 때문에 손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제재 근거로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제24조 등을 들었다.

제재심 1~3차에 모두 참석해 입장을 소명한 손 회장은 줄곧 금감원의 징계가 과도하다는 점을 호소했다. 우리은행이 내부통제 체계를 충분히 갖췄을 뿐더러 자신은 DLF 상품 판매 관련 의사결정에 개입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과 시행령을 금융사고에 따른 CEO 제재 근거로 둘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중징계를 받은 손 회장은 작년 3월 법원에 제재 효력 정지 가처분과 함께 금감원 제재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9월 1차 변론이 시작됐다. 해를 넘겨 2021년 4월 2차 변론, 6월 3차 변론을 거쳐 지난달 27일 최종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준수 의무’ 위반으로는 제재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금감원이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피고(금감원)는 근거법령이 허용하는 제재 사유를 벗어나게끔 처분사유를 구성한 탓에 적법한 재량권을 행사했다고 볼 수 없다”며 “금감원은 근거법령의 범위 내에서 적법하게 처분사유를 구성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제재를 가할 수 있을 뿐”이라고 명시했다.

재판부의 해당 판결은 최근 1~2년간 이뤄진 당국의 무리한 제재에 브레이크를 건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선고 결과는 금융사 지배구조법과 시행령을 통해 금융사 수장에게 내부통제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DLF·라임·옵티머스 등 일련의 펀드 사태와 연관해 손 회장을 비롯, 10명의 금융사 CEO들이 당국으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았다. 만일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면 이들에 대한 기존 처분들은 정당성을 얻고 그대로 확정될 공산이 컸다. 당장 수많은 수장들의 사임과 새 CEO 선출 등으로 금융업계에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수 있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힘든, 사실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쪽”이라며 “이번 판결로 금감원은 재량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우리은행·금융기관·입법처, 모두 '경종'

선고공판이 끝나고 세간의 이목은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데 집중됐다. 물론 결론만 보면 손 회장의 승이 맞다고 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전체 판결문을 살펴보니 무결점의 완벽한 승리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행정처분만 취소했을 뿐 우리은행에 대한 금융소비자 보호 미비점에 대한 지적 사안들이 판결문에도 다수 적시됐다. 일례로 우리은행이 상당수 내부통제기준을 갖춰놓았다고는 하나 유명무실하게 이용된 사례들이 나열돼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신규 출시한 DLF 상품 99.2%에 대해 상품선정위원회나 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 평가 등 적정성 검토 절차를 생략했다. 또한 사내 홍보, 직원 연수 과정에서 상품판매에 유리한 결과만을 강조해 전달해 영업점 직원들로 하여금 DLF가 안정적인 상품인 것으로 오인토록 했다. 이밖에 위험 1등급 상품에 대해 안전하다는 식의 적합성 보고서를 작성한 점도 눈에 띈다. 우리은행도 인정한 사실로 판결문에 적혀 있다.

손 회장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재판부가 앞서 문제들은 내부통제의 '운영상' 문제점이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부통제 자체를 수립해두지 않아 발생한 '마련 의무 위반'에 해당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다만 우리은행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 조직적 부당행위가 개입돼 있었다는 점은 확실히 드러낸 사안이었다.

이 밖에 재판부는 우리은행의 관련 문제를 금융권 전반으로 확장해 볼 때 현재의 내부통제 문화는 법리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국내 금융업계에 내부통제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충분한 자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절차 미비로 금융권 내 사고 발생이 적지 않다는 점을 적시했다.

재판부는 “금융기관이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도외시한 채 실적만을 좇거나 경영진이 욕망에 따른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탐욕’에 제동을 걸어 줄 수 있는 내부통제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며 “(…)현실에서도 실제로 다수의 금융소비자가 대규모 피해를 보고 금융시스템 붕괴 우려까지 생기는 금융사고도 계속 발생 중”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입법 미비에 대한 문제점도 짚었다. 판결선고와 함께 한 제언을 통해 “5개 중 4개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배구조법과 시행령, 그리고 관련 고시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며 “금융기관이 충실한 내부규범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국 역시 사후적으로 해당 법령을 이용할 수 없도록 관련 규정을 구체적으로 정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사자들과 사회구성원을 최대한 설득할 수 있는 판결을 ‘좋은 판결’이라고 한다”며 “이번 DLF 판결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최소화되는 한편 금융기관, 당국, 입법처 등에 동시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좋은 판결이라고 보고 나머지는 다른 사회적 구성원들이 완성해 가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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