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M&A]독과점 기준 '온도차', 대한항공 '슬롯 반납' 가능성은공정위 '개별 노선' vs 대한항공 '종합적 고려'
유수진 기자공개 2021-10-14 07:40:17
이 기사는 2021년 10월 12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슬롯 반납' 가능성이 점쳐진다.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해 기업결합심사를 진행 중인 국내외 경쟁당국들이 좀처럼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양사의 결합이 일부 노선에서 경쟁 제한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진다.이는 당초 대한항공이 예상했던 시나리오와 차이가 있다. 독과점은 대한항공이 이번 딜 초반부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이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발목잡혀 인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공정위와 독과점에 대한 판단 기준을 다르게 설정한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한항공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지분 취득 예정일자를 12월31일로 정정한다고 공시했다. 기존 9월30일에서 3개월 연장한 것이다. 대한항공이 지분 취득일을 미룬 건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 6월30일에도 같은 내용의 정정공시를 했다. 종합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한 작년 11월 최초로 정했던 취득일에서 총 6개월을 미룬 상태다.
이유는 거래 선행조건 미충족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체결한 신주인수계약은 국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전제로 한다. 대한항공이 신청서를 접수한 필수 9개국과 임의 5개국 등 14개국 가운데 승인을 내준 곳은 5곳 뿐이다.
경쟁당국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건 기업결합으로 인한 독과점 여부다. 대형항공사(FSC) 2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만큼 경쟁 제한 유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향후 운임 인상 등 소비자 편익을 해칠 수 있어 더욱 세밀하게 살핀다. 이들은 아시아나항공이 경쟁 제한 예외를 인정받는 '회생불가 항변' 사유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흘러가는 분위기는 당초 대한항공의 예상과 다르다. 앞서 우기홍 사장은 3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천공항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슬롯 점유율은 약 40% 미만 수준"이라며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타 글로벌 항공사들의 허브공항 슬롯 점유율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항공사들의 허브공항 슬롯 점유율을 제시했다. 델타항공은 애틀란타공항에서 79%, 아메리칸항공은 댈러스공항에서 85%의 슬롯을 점유하고 있다. 루프트한자의 프랑크푸르트공항 슬롯 점유율은 67%다. 반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뿐 아니라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과 모두 합쳐도 인천공항 점유율이 50%에 미치지 않는다.
우 사장은 "글로벌 항공시장은 완전경쟁시장에 가깝고 소비자의 선택 폭이 매우 광범위해 경쟁제한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양사 통합으로 인한 독과점 우려가 거의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항공자유화(오픈스카이) 특성상 특정 항공사가 독과점으로 초과이익을 내면 타항공사들이 진입해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독과점에 따른 초과이윤이 어렵다고도 부연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기준은 이와 확연히 다르다. 허브공항의 노선 전반이 아닌 개별 노선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특정 노선에서 독과점 발생 우려가 있을 경우 그에 대해 '원포인트' 시정을 요구하려는 의도다. '평균의 함정' 등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도 풀이된다. 이는 공정위의 심사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어느 노선에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해외 경쟁당국과 협의를 거치는 것도 문제가 있는 노선에 대해 각자 조치를 취하다보면 충돌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독과점 가능성이 있는 노선에 한해 대한항공 측에 시정을 요구하겠다는 의미다.
조성욱 공정위원장 역시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장 획정과 노선별 분석 등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며 "경쟁 제한성이 있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게 심사관들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실무자 뿐 아니라 국장급도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이 결국 특정 노선의 운수권·슬롯을 반납하거나 타 저비용항공사(LCC) 등에 양도할 거란 얘기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쨌든 기업결합을 승인하는 주체가 공정위인 만큼 사측의 입장을 어필하는 데 한계가 있단 이유다. 일부 노선에서 점유율을 낮추는 등 조건 이행을 약속해야 인수를 최종 성사시킬 수 있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독과점 여부는 직항 점유율이 아니라 항공자유화와 경유노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며 "글로벌 항공시장은 무한경쟁이고 고객이 취사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슬롯 반납 가능성에 대해선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일각에는 슬롯 회수가 최선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심사 승인 절차가 슬롯 재배치와 같은 경쟁력 약화를 위한 것이 아닌 진정한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전과 소비자 혜택을 위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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