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회사의 유혹…산은 직원에 "옮기실래요" [흔들리는 KDB산업은행]①상반기 퇴직자 60명 육박…생활 안정 위해 조건 낮춰 민간행
고설봉 기자공개 2022-08-04 08:19:39
[편집자주]
KDB산업은행이 흔들리고 있다. 본사 부산 이전 논의가 진행되면서 안팎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조직은 분열되고 인력 이탈 조짐도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보루이자 산업계 전반에 자금을 공급하는 산은의 핵심 기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더벨은 최근 산은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진단하고 부산 이전 등 현안을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02일 15시1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DB산업은행에서 대규모 인력 이탈이 감지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60여명에 달하는 직원이 퇴직했다. 고도로 훈련된 전문 인력들의 이탈은 산은의 근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산은 내부에선 위기감이 높다. 부산 이전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인력 이탈이 시작된 만큼 실제 이전이 진행될 경우 대규모 인력 이탈로 번질 수 있다. 조직의 기본적인 기능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은 직원 뽑아 드릴까요”…민간 금융사에 퍼진 '산은 이탈론'
“HR 회사에서 요즘 산은 출인 직원을 뽑아준다는 제안을 심심찮게 받는다. 우리 회사에서 결정만 내리면 얼마든지 원하는 스펙의 직원을 산은에서 데려올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연봉 등 조건도 예전처럼 높게 제시하지 않는다.” 한 시중 금융사 인사 담당자의 말이다.
과거 산은을 떠나 민간 금융사로 이직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았다. 이직을 하더라도 산은 직원들은 담당 업무에 따라 연봉을 대거 높여가는 것이 관례였다. 특히 자본시장 담당자들은 산은 재직 시절보다 적게는 2배 이상 연봉을 올려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직률은 높지 않았다. 산은에 재직하는 대다수 직원들에겐 사명감이 있었다. 한국 경제의 핵심인 산업계 및 국가 기간산업의 정상화를 짊어지고 있다는 자긍심이 높았다. 또 국가적으로 중대한 인프라 투자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한다는 자신감도 높았다.
최근 산은 직원들의 사명감과 자긍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부산 이전으로 촉발된 산은에 대한 정치권의 일방적 행보 때문이다. 국책은행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에 대한 분노가 크다. 정치권의 유불리에 맞춰 전후사정 없이 이전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관계는 “최근 이직하거나 이직을 생각하는 동료들이 부쩍 늘었다”며 “부산 이전이 발표되고 나서 실제 이전 가능성과는 상관 없이 조직에 회의를 느껴 떠나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산은을 떠난 직원은 39명으로 집계됐다. 퇴직 절차를 모두 마친 직원 숫자다. 아직 사직서 제출 뒤 잔여 연차 소진 등을 하지 못해 완전히 퇴직 처리가 되지 않은 직원은 2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모두 합하면 올 상반기에만 60명 가까운 인력이 산은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다. 정년 퇴직 등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퇴직자를 제외한 순수 자발적 퇴직자만 집계한 결과다.
지난해 연간 자발적으로 산은을 퇴직한 직원 숫자는 40명이 조금 안된다. 올 상반기에만 1.5배 가량 더 많은 직원들이 산은에서 짐을 쌌다. 올 연말이 되면 산은의 연간 퇴직자 수가 100명을 훌쩍 넘을 것이란 계산도 가능하다.
연간 산은이 채용하는 신입행원이 70여명 남짓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올해 산은 설립 이후 처음으로 신규채용 인력보다 순수 유출인력이 더 많을 수 있다.

◇더 낮은 보수에도…생활 안정 찾아 떠난다
2010년대 초반,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필기시험이 동시에 치러진 날이 있었다. 한국은행은 미달로 자존심을 구겼고, 수출입은행은 산업은행의 벽을 실감했다. 산업은행은 넘쳐난 지원자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산업은행은 한국은행을 넘어설 만큼 채용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한국 경제의 중추인 산업계 지원과 정채자금 운영, 산업계 전반 구조조정 및 포트폴리오 재조정 등 국가 기간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촉발된 산업계 구조조정을 주도한 것도 산업은행이었다. 이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산은이 앞장서 국가 산업 전반의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선진시장에 맞춰 기업들을 리모델리했다.
산업은행 덕분에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중공업, 해운, 항공 등 우리 경제를 먹여살리는 핵심 산업과 기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졌다. 노동과 고용 시장도 선순환 되면서 1인당 GDP 3만달러 시대를 맞이했다.
최근 산은은 내부에서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 국가 산업계 전반에 대한 지원과 구조조정을 전담했던 핵심 인력들조차 퇴직을 고민을 하고 있다. 민간 금융사로의 이직을 타진하는 직원들이 많이 늘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이 전주 이전 후 고도로 훈련된 고급 전문 인력들의 이탈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며 “기금운용본부의 핵심인 운용역들은 높은 연봉과 서울에서의 안정된 근무 환경을 찾아 조직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산은에서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상황은 예전 국민연금에서의 대규모 인력 이탈 때보다 좋지 않다. 자본시장이 얼어 붙으며 금융권 채용 시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산은 직원들이 당장 조직을 떠나도 민감 금융사에서 대우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산은 직원들의 이직률은 높은 편이다. 생활 기반이 있는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다면 급여 등 다른 조건이 좋지 않아도 이직할 의향이 있다는 직원들이 과거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던 직원들도 서울에 있기 위해 이직을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며 “명예와 자긍심은 현실의 벽 앞에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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