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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자금시장 긴급 점검]디폴트 리스크 회사채까지 전이…'SPV' 등판할까수급 실종, 연초효과도 크지 않을 듯…한국은행 긴축재정과 상충 문제

강철 기자공개 2022-11-02 07:10:18

[편집자주]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가 국내 단기자금 시장을 풍전등화로 몰아가고 있다. 금융당국이 '50조원+α'의 컨틴전시 플랜을 발표했으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지켜봐야 한다. 그중 가장 취약한 부문으로 지적받고 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심각한 유동성 미스매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벨이 직면한 단기자금 시장 현안과 위기 극복 방안을 진단한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1일 08: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레고랜드 사태가 유발한 단기자금 경색이 전체 회사채 시장으로 전이되고 있다. 최근 AA등급 우량채에 이어 공기업 회사채마저 미매각이 나는 등 수급 리스크가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국고채 금리 스프레드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연초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내년 1분기에도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급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처럼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실질적인 솔루션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이러한 유동성 지원 정책이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와 상충하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공기업 회사채까지 잇따라 유찰

LG유플러스는 지난 10월 19일 실시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 1500억원 완판에 실패했다. 얼어붙은 업황을 고려해 단기물로만 트랜치를 구성했으나 결국 3년물에서 200억원 미배정이 발생했다. LG유플러스가 국내 공모채 시장을 찾기 시작한 2013년 9월 이래 미매각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유플러스와 비슷한 시기에 회사채 프라이싱을 실시한 한온시스템과 한화솔루션도 전량 미매각과 다름없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3000억원 모집에 나선 한온시스템은 2500억원 미배정이 발생했고 한화솔루션은 2년물에 고작 130억원을 모으는데 그쳤다.

수급 불안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AA등급 우량 발행사마저 대규모 미매각을 내자 회사채 시장은 바로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KB금융지주, DGB금융지주, 롯데하이마트, SK인천석유화학 등 당초 10월 직접조달을 계획한 기업 대부분이 발행을 철회하거나 시점을 내년 상반기로 연기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장 분위기를 감안할 때 공모 회사채로 자금 조달을 시도하는 기업이 연말까지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도 은행 차입을 비롯한 다른 조달 루트로 미리 현금을 쌓아뒀기 때문에 만기채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은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급격한 단기자금 시장 경색이 회사채를 포함한 장기 크레딧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국채나 다름없는 지방자치단체 보증 PF-ABCP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는 마당에 신용도가 더 낮은 회사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있겠냐는 분석이다.

회사채의 신용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국고채 대비 금리 스프레드'는 10월 들어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10월 초 100bp 수준이었던 3년물 국고채와 AA0 회사채의 스프레드는 최근 140bp까지 벌어졌다. 회사채 매입 리스크가 사상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가 발발한 이후 인천공항공사와 한국도로공사를 비롯한 몇몇 공기업이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섰으나 모두 모집액을 모으지 못하고 유찰했다"며 "이제는 공기업 회사채도 기한이익상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투자자 사이에 심각하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긴축 재정에 따른 금리 상승으로 은행에서 출시하는 정기예금이 회사채와 제2금융권 상품보다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돼버렸다"며 "유동성이 지나치게 은행으로만 몰리고 있는 점 역시 회사채 수급 불안정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고채-회사채 금리 스프레드 추이 <출처 : KIS자산평가>

◇내년 '연초효과' 없을 수도

단기자금 시장 경색이 유발한 회사채 수급 침체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기업의 조달 니즈와 기관 투자자의 유동성이 매칭돼 발생하는 '연초 효과'가 2023년에는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금융당국이 계속해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은 점은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많은 전문가가 한국은행이 내년 2월 금융통화위원회까지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금리 상승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만큼 눈앞에 보이는 평가손실을 감수하고 회사채를 매입할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 관계자는 "투자 재원이 충원되는 연초라 하더라도 현재 업황에 개의치 않고 회사채 매입에 나설 수 있는 곳은 은행과 퇴직연금 정도"라며 "정부가 충분한 시장 검토와 소통 없이 너무 급하게 금리를 올린 것이 여러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0월 23일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열고 '50조원+α'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하는 컨틴전시 플랜을 발표했다. 유동성 지원 계획에는 20조원 채권시장안정펀드 재가동을 비롯한 회사채 시장 안정화 대책도 포함됐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자금 20조원은 은행과 보험사를 위시한 83개 약정 기관의 십시일반한다. 11월 10일 전까지 운용자금 모집을 위한 캐피탈콜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1차 매입 대상은 연내 만기 도래하는 일반 회사채, 여전채, 은행채 등으로 설정했다.

다만 펀드 재원이 대부분 금융사에서 나오는 점을 감안할 때 채권시장안정펀드가 회사채 발행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매입 대상 회사채의 등급을 AA- 이상으로 설정한 점 역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재원이 새로운 자금이 아닌 일종의 돌려막기라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에 지원책 발표 후에도 시장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그나마 펀드 잔여액 1조6000억원을 곧장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단기자금 시장만 조금씩 안정세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금융당국이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와 같은 실질적인 지원책을 조속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형태로 6조원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으나 단기자금 시장 회복에만 기여할 뿐 회사채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이 2020년 7월 출범한 SPV는 2021년 12월까지 약 4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며 당시 코로나 19로 침체됐던 회사채 시장 개선에 크게 일조했다. 일몰 이후에는 언제든 재가동이 가능한 비상 기구로 전환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SPV 가동은 한국은행이 회사채 시장에 신규 자금을 푼다는 의미인데 이는 정부의 긴축재정과 정면으로 상충한다"며 "재정 기조를 바꾸지 않을 거라면 은행에 과도하게 집중된 유동성을 다른 경제 주체에게까지 순환되도록 해야 할건데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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