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5월 16일 08: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도 VC업계의 화두는 '신중한' 투자다. 신규는 물론 기존 포트폴리오의 후속 투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잣대다. 미래 성장가치가 높은 기업보다는 현재의 본질가치가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한다는 원칙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수치들도 방증한다. 벤처투자동향에 따르면 1분기는 8815억원만 투자됐다. 지난해 동기 대비 60%나 감소했다.언더 밸류에이션으로 후속 투자가 진행 중인 신산업 섹터에는 새로운 투자 양상도 나타난다. 바이오·헬스케어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의 후속 라운드에는 신·구 재무적투자자(FI)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신생 FI는 기존 주주들이 후속투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분희석 조항(anti-dilution)을 삭제해 일종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 회사를 살리는 데 동참하지 않는다면 주주로서 권한도 포기하라는 의미다.
벤처생태계 시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합리적인 투자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지나면 다시 투자 활기가 찾아올 것이다. 23년 전인 2000년대 닷컴버블때도 그랬다. 시장이 침체된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땐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부는 우회적으로 투자 압박을 가하며 '선택 설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한국벤처투자 1차 정시 출자사업부터 신속한 투자 집행으로 투자 목표율을 달성한 운용사에 관리보수 추가 지급, 성과보수 우대 지급, 모태펀드 출자사업 선정 시 가점부여 등의 유인책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관리보수 지급 기준을 펀드결성 초기부터 많이 투자할수록 많이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꿨다. 기존에는 조합 약정총액을 기준으로 산정했는데 올해 출자사업부터는 '투자금액'에 더 무게를 둔다.
과연 빠른 투자가 정답일까. VC 입장에서는 독이 든 성배다. '신기루'나 마찬가지인 성과보수를 만나기 전에는 실질적 '샘물'인 관리보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생 VC에 관리보수는 생존과 직결된다. 무리해서라도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 소진에만 집착하면 단기적으로 투자가 활성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실 있는 투자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투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결과적으론 모태펀드 전체 투자 실적의 악화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2020년부터 이어진 투자 촉진에 따른 역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덩치만 커지고 내력은 부족한 기업들을 양산했다. 말을 비틀자면 또 거품이 생긴 셈이다. 자력갱생을 등한시한 스타트업과 단기이익에 눈 먼 VC의 잘못된 만남에서 온 결과다. 속도가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벤처생태계 성장의 본질은 롱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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