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금융은 지금]대출업 진출 두고 민간 금융사와 대립④자산 운용만으론 한계 지적…대출 진출 시 상호금융·저축은행 직격탄
김형석 기자공개 2023-09-07 07:33:51
[편집자주]
우체국은 1905년 금융사업을 시작했다. 국고수납대리점으로 역할을 시작해 이제는 보험과 예금을 아우르는 종합금융업으로 성장했다. 우체국금융은 공공성만 강조하다 부실로 금융 사업을 접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국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빠르게 자산 성장을 이뤄 이제는 우편사업을 지원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며 우체국금융은 자산운용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출 없이 자본 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우체국금융은 민간 금융사와의 경쟁, 자산의 운용 및 부실관리 등 난제 속에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더벨은 우체국금융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05일 10: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체국금융은 과거부터 대출영업 허용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해 왔다. 대출업이 불가한 현행법으로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운용이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엔 국내외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우체국금융은 유가증권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내기도 했다.하지만 민간 금융사들은 우체국금융의 대출업 허용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오프라인점포를 보유한 우체국에 대출업이 허용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지역 기반 금융기관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운영 주체가 정부인 우체국금융의 높은 신용도 역시 우체국금융의 대출업 허용에 민간 금융사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 잇단 대출업 진출 시도 모두 '무산'
우체국금융은 민간금융사에 적용하는 은행법과 보험업법, 신용협동조합법 등이 아닌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운영된다. 해당 법에 따라 우체국금융의 영위할 수 있는 금융업으로 예금사업과 보험, 펀드, 후불카드 등의 업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출업무 명시하지 않았다.
현재 우체국금융 내에서 할 수 있는 대출업은 약관 대출로 불리는 환급금대출이다. 우체국금융은 보험계약자가 청구할 때에는 보험계약이 해지된 경우 등에 되돌려줄 수 있는 금액의 범위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대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납부한 보험료 한도 내에서 진행되는 환급금 대출은 새로운 신용공여는 아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대출이라고 볼 수 없다.
과거 우체국금융이 대출업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7월까지 우체국금융은 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가계자금 및 주택자금 대출을 해왔다. 하지만 이후 예금자보호법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관련 대출 취급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예금자보호법시행령은 금융기관 파산 시 원리금 전액을 정부가 보장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주면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유발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시행령이 개정됐다. 결국 보증보험계약이 예금보호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이후 사실상 우체국금융의 대출업은 중단됐다.
이후 우체국금융은 꾸준히 대출업 진출을 타진했다. 1999년 우체국의 주무부처였던 정보통신부는 우체국이 체신보험계약자에 대해 일반대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체신보험 특별회계법 개정안을 논의했다.
당신 정통부는 보험계약자에 대한 대출 항목을 신설해 그동안 계약자가 불입한 보험금액 한도에서만 가능했던 '환급금대출'을 불입금액과는 관계없이 '계약금액'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도 논의했다. 정통부는 이 밖에도 우체국이 한미은행(씨티은행)의 대출업무를 대행하는 방법으로 일반대출업무를 실시하는 논의도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가 우체국의 대출업 영위를 불허하면서 이 같은 논의는 실행되지 못했다.
지난 2016년에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금리 우체국 대출상품 공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우체국 예금·보험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법안에는 우체국은 전체 예금자산의 30% 범위에서 중금리 대출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이후 우체국금융은 2017년에도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6~12%대 금리의 대출상품 출시를 준비했었다.
지난해에는 우체국 산하 기관인 우체국금융개발원이 사잇돌대출 동향 조사를 진행했다. 사잇돌대출이란 중·저신용자에게 제공되는 정부지원 중금리 대출상품이다. SGI서울보증이 대출원금을 100% 보증한다. 당시 우체국금융개발원은 국영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 제고를 위해 공공성이 높은 사잇돌대출 진출여부를 논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체국금융의 노력은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우체국금융의 대출업 진출에 기존 민간 금융사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앞서 1999년과 2017년 우체국금융의 대출업 진출이 논의되자 농협중앙회와 수협,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신협, 저축은행 등 시중 상호금융 기관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 민간 금융사는 '우체국 은행업무대행 저지결의대회'를 개최하고 국회에 관련법 개정 철회를 이끌기도 했다.
상호금융 한 관계자는 "정부기관이 직접 시장에 진출하면 시장 왜곡이 나타나게 된다"며 "부실대출이 발생하면 그 부담을 국민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상호금융·저축은행 영업 직격탄
우체국금융의 대출업 진출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곳은 상호금융과 저축은행들이다. 이들은 전국적인 오프라인망을 갖춘 우체국금융에 대출업이 허용되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체국금융의 전국 오프라인 채널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체국이 보유하고 있는 점포 수는 3367곳에 달한다. 우정사업본부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점포(4~7급, 출장소)는 1859곳이다. 나머지 별정국(704곳)과 취급국(804곳) 등 위탁국으로 분류된 점포는 1508곳이다.
3367곳의 점포는 농협과 수협의 지역 금융점포 수를 합친 수에 달한다. 신협과 새마을금고 역시 전국의 각 조합 점포 수는 1000~2000곳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 상호금융의 경우 공동대출을 제외하면 각 조합이 개별적으로 영업을 진행한다. 사실상 중앙 집권적으로 운영되는 우체국금융을 견제하기 어렵다. 저축은행의 총 점포 수는 280곳이다.
사실상 정부가 예금 전액을 보호하고 있는 점도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에게는 부담이다.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우체국에 납부한 예금과 보험료 전액을 보장한다. 이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최대 5000만원까지만 보호를 받는 민간금융사와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 새마을금고의 부실 논란이 발생한 올해 상반기 우체국예금의 수신잔액이 빠르게 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우체국 예금 잔액(요구불예금·거치식예금·적립식예금)은 84조7879억원으로 지난해 말 81조6876억원 대비 3조1003억원 증가했다. 지난 4월 말 85조6056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유지흐름을 보였다.
이는 상호금융권과 저축은행 중 가장 큰 증가폭이다. 이 기간 전국 저축은행의 수신액은 5조7124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새마을금고는 258조6141억원에서 251조4209억원으로 7조1932억원 수신액이 감소했다. 신협과 상호금융(농·수협, 산림조합)은 수신액이 증가했지만 모두 우체국예금보다 수신액 규모가 크다. 신협과 상호금융의 수신액 규모는 각각 우체국예금보다 2~7배가량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체국금융의 경우 금융시장의 건전성이 악화될 때 자금이 몰린다"며 "이는 납부한 금액을 모두 정부가 보장하는 현행 우체국예금·보험법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신용도는 상대적으로 리스크 부담이 큰 상호금융권과 저축은행에게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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