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VCC 공략]국내 구조적 한계…해외로 눈돌리는 사모 운용사②폐쇄적 환경에 자본 유치 난망, 금융당국 인지 미흡
조영진 기자공개 2023-10-26 10:28:16
[편집자주]
3년 전 VCC 제도를 도입한 싱가포르에 글로벌 자금이 쉴새없이 밀려들고 있다. 라임, 옵티머스 사태로 인해 꽁꽁 발이 묶인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들은 폐쇄적인 금융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VCC 활용을 타진중이다. 실제로 몇몇 운용사들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직접 해외자본을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다. 더벨은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헤지펀드의 해외자본 유치전략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0월 24일 14: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자금이 모여드는 싱가포르에 국내 헤지펀드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 한국투자금융지주 산하 헤지펀드 운용사인 키아라어드바이저 등이 일찍이 진출했고, 최근에는 NH헤지자산운용, GVA자산운용 등이 VCC 제도를 활용해 인바운드(국내유입) 투자자 유치에 나선 상황이다.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싱가포르 현지법인은 현재 약 1700억원 규모의 운용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다만 키아라어드바이저와 함께 주로 아웃바운드(해외 투자)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몇몇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들만이 인바운드 투자유치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수천억원 단위의 펀드를 운용 중인 NH헤지자산운용과 GVA자산운용이 직접 싱가포르로 향한 것은 국내 펀드 시장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외환거래법, 회사·신탁법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 폐쇄적 환경 탓에 국내 자산운용사에 유입되는 해외자본은 일임자산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외국자본 유치 사실상 불가능, 해외진출로 활로 모색
아시아 금융허브로 부상한 싱가포르, 그 중에서 VCC 비히클을 공략하려는 움직임도 앞선 애로사항들로부터 비롯됐다. 싱가포르통화청이 VCC라는 신흥제도를 활용해 케이먼 군도, 모리셔스, 룩셈부르크 등에 산개돼 있던 거대자본을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VCC가 지분 주주에게 지급하는 배당금은 싱가포르 내 일반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세금이 면제된다.
아시아 등지에 투자하려는 외국인투자자들은 VCC라는 비히클이 투자신탁이 아닌 회사형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간소화 된 투자 의사결정 체계, 주주 개인정보 보호 강화 등 여러 측면에서 이점이 크기 때문에 외국인투자자들이 회사형 비히클만 취급하려 한다는 게 업계의 주된 설명이다.
반면 신탁 비히클의 경우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수익자의 의사결정이 빠르게 반영되기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또 판매 채널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생소한 포인트로 지적되고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측 법무법인이 한국의 투자신탁 계약서를 받아드는 순간 딜이 무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케이먼 제도나 룩셈부르크 혹은 싱가포르 VCC 등 세계에서 스탠다드로 여기는 양식이 아닐 경우 법무법인들이 아예 검토를 포기해버린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주로 활용되는 비히클은 펀드와 투자일임 정도다. 업계에 따르면 펀드 비히클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출자한 경우는 현재 전무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나마 투자일임 방식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접근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실제로 최근 쿼드자산운용이 유치한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자금도 일임 구조로 유입됐다는 전언이다.
엄격한 외환제도에 해외투자자들이 유입될 수 없다는 점도 국내 헤지펀드들이 싱가포르를 찾아 떠나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은 입출입이 통제되는 원화 자산을 보유하길 굉장히 부담스러워한다"며 "특히 룩셈부르크 등지의 환거래를 경험했던 외국인들 입장에선 한국에 있는 헤지펀드에 자금을 출자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내 헤지펀드의 싱가포르 VCC 공략도 이 같은 애로사항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주된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한국형 헤지펀드가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케이먼 제도, 버진아일랜드 등에서 주로 활용되던 구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싱가포르 진출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외국인투자자 등록제 폐지한다는 금융당국…업계 반응은 회의적
일각에선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려는 외국계 자본에 한해 규제를 일부 완화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 중소형 헤지펀드의 경우 해외진출을 고려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일 뿐더러, 외국계 자금유입이 국내증시의 저평가 요인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당국도 외국인투자자 유치를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다. 올해 초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해외 투자자금 유치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31년간 유지한 외국인투자자등록제를 연말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그간 있던 규제를 완화할 경우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이 제고될 것이란 판단이다.
다만 운용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국내증시에 직접투자하는 개별 외국인투자자들이 얼마 되지 않을 뿐더러, 그간 유입된 외국계 자금 또한 해외 글로벌 펀드를 통한 패시브 유입이 대부분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외국인투자자 등록제 폐지가 국내 펀드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거래법, 신탁·회사법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펀드 비히클에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운용사 입장에선 해외자본 유입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사형 구조의 비히클 활성화, 판매·신탁 등의 중간채널 간소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국형 헤지펀드는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직접 해외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의 모든 펀드들이 VCC 구조가 아닌 만큼 국내 금융시장도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보다 다양한 방안이 나오길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운용업계의 이러한 애로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자산운용업무를 관리하는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외국인투자자등록제 폐지 외에 자산운용사와 펀드 비즈니스 쪽에 입각한 대책은 현재 논의된 내용이 없는 상황"이라며 "따로 요청받은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내부논의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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