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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맞은 네패스그룹]이병구 회장의 문책인사 '반도체 레전드'도 쳐냈다③2021년 회장 예우 영입 정칠희 전 삼성 종기원장 2분기 퇴사, FO-PLP 양산실패 자인 분석

조영갑 기자공개 2023-11-09 07:39:26

[편집자주]

국내 주요 후공정 외주가공(OSAT) 업체인 네패스그룹이 전사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지주사격인 네패스를 중심으로 차세대 패키지 기술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PLP)' 공정에 '올인' 했으나 양산 페이즈 진입에 실패하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내년 패키징 시장의 업사이클이 예고된 상황이지만, FO-PLP 승부수를 계속 던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네패스그룹의 그간 궤적과 돌파구를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7일 13: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마디로 (FO-PLP의 실패를) 책임져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죠."

네패스그룹의 사정에 밝은 한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책임져야 할 대상은 정칠희 전 네패스 회장(미등기)이다. 네패스는 최첨단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법인 FO-PLP(팬아웃 패널레벨패키지) 기술을 시장에 안착시키고,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1년 3월 정 전 회장을 영입했다.

하지만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정 전 회장은 FO-PLP 관련 양산진입 실패를 책임지고, 올 상반기 네패스를 떠났다. 네패스는 정 전 회장의 퇴사 시점을 정확하게 확인해 주지 않았다. 다만 1분기 분기보고서 임원현황에 등재돼 있던 정 전 회장은 2분기 반기보고서 임원현황에는 이름이 빠졌다. 2분기(4월~6월) 내에 퇴사가 결정되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

네패스가 2020년부터 R&D(연구개발)과 CAPEX 투자를 동시에 진행했던 FO-PLP는 대만 TSMC와 ASE의 FO-WLP(팬아웃 웨이퍼레벨패키지)를 양산성, 효율성 측면에서 넘어설 수 있는 첨단 패키지 공법으로 평가되는 기술이다.

하지만 수율 문제로 인해 올 초 시장의 기대를 모았던 퀄컴(Qualcomm) 향 AP 관련 패키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양산진입은 기약이 없어졌다. FO-PLP 양산을 위해 물적분할 신설된 계열사 '네패스라웨'는 전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도 활로를 찾지 못하고, 대규모 현금 순유출을 겪고 있다. 유동성 지원과 지급보증에 나선 모회사(네패스)에도 불똥이 번지는 형국이다.

정 전 회장이 네패스그룹을 떠난 것은 FO-PLP 공법의 기술적 미완과 영업 상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 전 회장이 영입된 시기는 2020년 네패스라웨가 네패스의 FO-PLP 사업 부문을 받아 분할, CAPEX 투자를 확대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네패스는 첨단 패키징인 FO-PLP를 축으로 놓고, 횡으로는 네패스의 범핑 및 WLP, 종으로는 네패스아크(파이널 테스트) 등으로 밸류체인을 확장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FO-PLP가 시장에 안착하고, 반드시 수주 물량이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네패스그룹이 장기간 협의를 거치면서 테스트를 진행한 퀄컴향 물량 들이 수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현재는 이 그림이 틀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 이병구 회장은 정 전 회장을 문책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FO-PLP의 양산 실패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와 네패스 내에서 상징성이 짙은 인물을 쳐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홍보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네패스 관계자는 "어르신(임원)들 사이의 일이라 퇴임 시기, 사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최고 경영자급 사이의 일이라는 얘기다. OSAT 업계의 사정에 능통한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은 패키징 관련 전문가가 아닌데, 반도체 사업 총괄이라는 타이틀로 영입됐다가 (경영상 실패를 책임지고) 토사구팽 당한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 및 최고 경영진의 결정이지만, 정 전 회장이 업계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상징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책성 경질은 네패스그룹 자체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 결정과 CAPEX 규모 등에 대해 재가한 것은 정 전 회장 영입 전 이병구 회장 라인의 결정이지만, 이에 대한 마케팅 실패는 고스란히 정 전 회장이 지게 됐다는 여론 때문이다.

여기에 정 전 회장 재임기간이 팬데믹과 패키지 시장의 불황과 겹치는 것도 정 전 회장 입장에서는 '항변'할 수 있는 요소다. 걸출한 개인이 돌파하기 힘든 구조적 외생변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정칠희 전 회장
반도체 업계 레전드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정 전 회장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사장급)을 지낸 학자적 경영자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 평가된다. 1957년 생으로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물리학), 미국 미시간주립대 물리학 박사 등을 취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제품기술과에 입사한 이래 LSI개발담당 연구원, 메모리개발담당 수석연구원, 시스템LSI사업부 기술개발실장, 종합기술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반도체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IR52 장영실상, 과학기술훈장도 받았다.

LSI사업부를 이끌면서 시스템 관련 각종 선행연구를 이끈 장본인이다. 인간의 뇌신경을 본따 만든 반도체인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을 주도했고, 종합기술원 부원장 재직 당시 삼성전자 차세대TV에 사용될 '퀀텀닷'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용 지문인식 알고리즘 개발도 대표적 연구 이력이다.

2021년 오너만 갖고 있던 '회장 직함'의 예우를 받으며 네패스그룹에 입성했지만, 2년 만에 중도 하차하게 된 셈이다. 네패스그룹은 1분기와 2분기 사이에 정칠희 전 회장과 더불어 소폭의 임원 인사가 있었다.

정 전 회장의 퇴사로 기존 김태훈 사장(반도체 사업개발본부)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업개발본부를 맡고 있던 박정훈 상무도 2분기 임원명단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 역시 FO-PLP 관련 문책성 인사로 보인다. 삼성전자 출신인 박 상무는 2009년 네패스에 입사해 후공정 패키지 관련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실무자였다. 재무를 총괄하던 김경태 부사장(사내이사) 역시 6월 중순 중도퇴임했다.

네패스 관계자는 "미국법인은 퀄컴을 비롯해 다수의 고객사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계속 영업을 진행할 것"이라면서 "다만 현재 반도체 불황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고, FO-PLP가 첨단 패키지 공법이라 시장 안착기까지 초기 2~3년 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룹사에서는 여전히 FO-PLP에 대한 기술적 확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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