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2월 29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병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정확한 처방이다. 의사의 정확한 진료와 처방을 통해 약을 복용해야만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 기업 역시 자금난으로 흔들리면 빠른 처방이 필요하다. 창업자가 직접 진단할 역량이 없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재무적투자자(FI)나 전략적투자자(SI) 등 새 주인 품에서 구조조정을 거쳐 재기하거나 영원히 사라진다.처방전이 필요한 기업들은 고금리가 시작된 지난해부터 하나둘씩 늘고 있다. 올해는 경기침체까지 겹친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2023년 법인 회생·파산이 역대 최고치를 찍은 배경이다. 법원통계에 따르면 올 11월까지 법인파산사건으로 접수된 건수는 1508건으로, 2022년(1004건)보다 늘었다. 기업회생 절차 접수 건수 역시 1432건으로 전년(1047건)보다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블라인드펀드가 연이어 출범했다는 소식은 희망찬 메시지로 시장에 울려 퍼진다. 2200억원 규모 구조혁신펀드를 결성 중인 SG프라이빗에쿼티(PE)는 최근 1524억원에 1차 클로징을 완료했다. 한투PE와 우리PE도 각각 2000억원, 1100억원 규모의 구조혁신펀드를 결성했다.
구조조정 투자라고 하면 LP들은 대게 고개를 내젓는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사건사고가 많아 딜 소싱과 클로징은 물론 밸류업까지 쉽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SG PE와 한투PE, 우리PE는 기존 구조혁신 투자·엑시트에서 우수한 실적을 입증하면서 깐깐한 LP들의 옥석가리기를 통과했다. 성장기업에만 투자하는 일반 펀드조차 유동성 경색으로 결성에 실패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박수를 쳐줄 일이다.
내년과 내후년에는 재무주치의의 처방이 필요한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장기간 재무 부담에 시달리던 건설사는 물론 금리 부담을 못 견딘 중소·중견기업마다 도산할 가능성이 큰 탓이다. 대유위니아그룹, 태영건설 등 규모 있는 기업까지 무너지는 상황이다. 구조조정 매물이 증가할 것이란 의견이 많다.
구조조정 투자 전문가들에 따르면 부실기업이 쏟아진다고 투자가 더 수월한 건 아니다. 어렵다고 돈 달라는 기업은 많지만 정말 회생 가능한 곳을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이유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 가격에 대한 매도·매수자간 이견이 여전한 점은 딜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바야흐로 구조조정의 시대가 왔다. 기업마다 불필요한 비용 최소화, 사업구조 개편, 경쟁력 제고 등의 작업은 밸류업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과제다. 구조조정 투자 하우스들이 더 귀하고 돋보일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들의 하방 안정성을 확보하는 딜 구조화 역량과 턴어라운드 가능성을 포착하고 현실화하는 노하우가 가뭄이 도래한 자본시장에 ‘단비’가 되길. 어려운 기업들과 퍽퍽한 현실을 함께 헤쳐 나갈 구조조정 하우스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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