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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 아트]이서현의 '리움 2.0'…클래식에서 다이나믹으로②과거보다 동시대 미술 조명…재단 보유 미술품 가치 5000억, 지분 가치 1.4조

고진영 기자공개 2024-01-26 07:37:40

[편집자주]

기업과 예술은 자주 공생관계에 있다. 예술은 성장을 위해 자본이 필요하고 기업은 예술품에 투자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얻는다. 오너일가의 개인적 선호가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성격도 갖고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예술 관련 법인의 운영현황과 지배구조, 소장품, 전시 성향 등을 더벨이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4일 08: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리움미술관의 역사는 홍라희 전 관장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1995년 호암미술관 관장으로 취임, 미술계 전면에 등장했다. 리움미술관이 2004년 문을 연 뒤로는 두 미술관의 관장을 동시에 맡았다. 세계적 컬렉터로 활동하면서 국내 미술계 트렌드를 이끌었는데 매년 1000억원 이상의 미술품을 수집해 ‘큰 손’으로 불렸다.

홍 전 관장은 고(故) 이병철 회장과 달리 취향이 현대미술 쪽에 기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리움 운영에 있어선 고미술과 현대미술의 투트랙을 절묘히 지켰다. 미술품 수집파워와 과감한 기획전시 등으로 국내 현대미술의 지형을 개선하는 데 국립기관보다 더 크게 기여했다고 이야기된다. 그가 관심을 보인 작품이 화랑가에서 유행하고 가격까지 급등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2017년 이재용 회장이 구속되면서 리움미술관에도 타격이 있었다. 홍 전 관장과 동생 홍라영 총괄부관장이 이틀 간격으로 잇따라 물러났다. 준비 중이던 ‘김환기 회고전’ 역시 갑작스레 중단됐고 이후 리움은 기획전시 없이 상설전시만 유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아예 휴관을 선언한다. 미술계에선 ‘버팀목이 사라졌다’며 시장 위축을 걱정하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리움이 재개관한 것은 2021년 10월이다. 그 사이 리움미술관은 홍 전 관장의 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2019년 1월 운영위원장으로 새롭게 임명됐다. 그는 부친 이건희 회장의 사후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가의 미술품 관련 사업이 사실상 이서현 위원장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이다. 한 세대를 지난 리움미술관의 2기가 열렸다.

◇상설전 개편 및 무료화, 권위적 이미지 탈피

이서현 위원장은 리움이 휴관하는 동안 재개관 준비에 상당한 공을 쏟았다. 우선 로고부터 기존의 글자를 강조한 ‘Leeum’에서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심볼 형태로 바꿨다. 오너일가 개인 미술관이라는 이미지를 덜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이다.

리움의 로고 변경

로비 공간의 경우 로툰다(원형 홀)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미디어 아트 등을 소개하는 가로 11.3m, 세로 3.2m(462인치)의 초대형 ‘미디어 월(media wall)'을 설치했다. 개관 당시부터 설치해온 미디어 월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또 도슨트 역할을 하는 디지털 가이드 등 디지털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리모델링 총괄은 이서현 위원장의 파슨스 디자인스쿨 동문인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맡았다.

또 원래 유료였던 상설전을 무료 개방으로 바꿨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이후 그의 컬렉션을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수집한 미술품을 국민과 공유하고자 국가에 기증'한다는 오너일가의 뜻을 계승했다는 설명이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삼성가 소장품이 2만점 이상 빠져나간 만큼 상설전 역시 변화가 필요했다. 보통 미술관 상설전은 잘 바뀌지 않고 리움의 상설전도 10여년 넘게 큰 틀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리움은 재개관을 계기로 출품작의 절반 이상을 처음 공개하는 작품들로 채웠다.


리움 관계자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리움 고유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며 "과거보다 동시대 미술 흐름을 폭넓게 조망하는 기획전과 프로젝트 전시를 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재개관 이후 리움의 대표적 기획전은 무료로 진행된 '인간, 일곱 개의 질문', AR(증강현실) 전시인 '칼레이도스코프 아이즈', 논쟁적 작가로 유명한 마루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WE' 등이 있다.


지난해 7월엔 개념미술가 김범 작가의 기획전 ‘바위가 되는 법’ 개막 이후 뒤풀이 행사로 리움 내부에 ‘포차(포장마차)’가 차리기도 했다. 이서현 위원장이 직접 김범 작가, 김성원 부관장 등과 포차에서 담소를 나눴다는 후문이다. 그 전까지 리움이 전시 개막 행사로 프라이빗 파티를 열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미술계에선 예전의 권위적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시도로 바라봤다.

다만 이 위원장은 모친과 달리 작품 수집에 있어선 아직 활발히 활동하지 않고 있다. 2022년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 당시 홍 전 관장과 함께 전시장을 찾긴 했으나 아트바젤 등 대규모 해외 아트페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리움의 관장 자리도 여전히 공석으로 유지 중이다.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가 부관장으로 공백을 일부 채우고 있지만 아직 리움의 두번째 전성기는 완전한 개화(開花) 전이다.


◇오너 사라진 재단 이사회

지배구조도 과거와 달라졌다. 리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은 삼성그룹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공익재단이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약 10억원의 개인재산을 출연해 1965년 설립했다. 지금 물가 기준으로 따지면 300억~400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니 규모가 결코 적지 않다. 당시 출연 재산은 주식이 9억3000만원 정도로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현금 500만원과 토지, 건물 등으로 채워졌다.

이후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 자리는 그룹의 총수가 맡는 게 관례였다. 이병철 회장이 20년 넘게 이사장직을 유지하다가 이건희 회장이 1992년 이사장에 올랐다.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직과 함께 삼성 총수의 상징적 직책으로 꼽혔다. 2015년 5월엔 이재용 회장이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경영권 승계의 시작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이재용 회장이 이사장에서 물러나면서 이런 암묵적 법칙이 깨졌다. 이 회장은 임기 만료 후 연임하지 않았고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새 이사장에 올랐다. 당시 재판 이슈에 따른 리스크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전자 북미총괄 지원팀장 출신인 류문형 전 전무가 대표이사로 있다. 이밖에 김황식 전 총리와 정성기 전 포항공대 총장,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이 이사진을 구성 중이다. 미술관 운영뿐 아니라 각종 지원사업을 같이 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 삼성문화재단이 공익목적사업에 쓴 비용은 사업수행비용과 일반관리비를 합쳐 484억원 수준이다. 전년(419억원)과 비교해 다소 증가했다. 이중 사업수행비용은 약 418억원이며 그 대부분인 397억원을 미술관 운영, 나머지는 문화지원(19억원)과 장학사업(2억원)에 사용했다.

공익목적사업 수익의 경우 2022년 약 4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60억원이었는데 약 20억원 줄었다. 기부금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삼성문화재단은 기업재단으로는 드물게 개인 기부를 받고 있다. 2022년 작가 정연두 씨가 2500만원 규모, 2021년엔 정민자 씨 등이 38억5260만원에 해당하는 작품을 기증했다.

정민자 씨는 한국 수묵 추상의 거장인 고(故) 산정 서세옥 전 서울대 미대학장의 배우자로, 아들 서도호 작가 역시 리움이 2012년 그의 개인전 ‘집속의 집’을 연 적이 있는 설치미술가다. 리움이 살아있는 작가의 개인전을 연 것은 서도호 작가가 처음이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민자 씨 등과 정연두 작가의 기증품은 명세서상 리움미술관에 전시되는 형태로 지출됐으며 2021년 11만명, 2022년 21만6053의 관람객이 다녀가 수혜를 봤다.

삼성문화재단의 전체 자산규모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2조1917억원이다. 이중 문화예술품은 5569억원으로 2017년 (5514억원)과 크게 차이가 없다. 삼성문화재단이 보유한 그룹 계열사 지분 가치도 1조원을 넘는다.


현재 삼성물산(0.61%), 삼성생명(4.68%), 삼성SDI(0.58%), 삼성전자(0.03%), 삼성증권(0.22%), 삼성화재(3.06%)의 지분을 삼성문화재단이 보유 중이며 취득원가는 657억원, 공정가치를 반영한 장부가는 2022년 말 종가 기준으로 1조4317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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