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 스토리]화장품 사업가가 폐플라스틱 재생유 올인한 사연은소망화장품 출신 김준식 한국에코에너지 대표…'진영' 지분 투자 유치
영천(경북)=조영갑 기자공개 2024-02-27 13: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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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답이 있다. 기업은 글자와 숫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다양한 사람의 땀과 노력이 한 데 어울려 만드는 이야기를 보고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뿐이다. 더벨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보고서에 담지 못했던 기업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담아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7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광광광광광…"공장 외부의 굴뚝에서 굉음이 연신 들리고, 굉음의 리듬에 맞춰 수증기가 배출된다. 공장 내부에서 연료를 고온, 고압으로 찐 가스를 냉각하면서 발생하는 수증기다. 이 가스 냉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물은 최근 이른바 도시유전이라고 불리는 '열분해유(열분해 재생유)'다. 연료는 땅 속의 석유가 아닌 버려진 비닐류 등 폐플라스틱이다. 이를 고온, 고압으로 분해해 경유 등의 산업유를 뽑아 낸다. 남은 슬러지는 다시 도로의 아스팔트 등으로 활용된다. 완벽한 '순환경제(Recycling Economy)'다.
지난 22일 경북 영천에 소재한 한국에코에너지를 찾았을 때 공장 집하장 한 켠에는 수거된 폐플라스틱 더미가 아파트 2층 높이로 쌓여 있었다. 열분해유의 원료다. 이 폐플라스틱이 용융 반응로에 들어가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열분해가 되고, 유증기를 외부 냉각타워에서 식혀 열분해유를 생산하는 프로세스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산화탄소, 고온, 고압 등의 데이터는 사물인터넷(IoT) 측정 솔루션을 통해 즉각 환경부로 전송된다. 철저하게 리스크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코에너지는 현재 각 10톤(t) 규모의 반응로 2기를 보유, 일일 최대 15톤 가량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캐파를 보유하고 있다. 열분해유 양산의 핵심인 기계설치성능평가도 이미 획득했다. 현재 약 40~50% 가량의 수율을 보이고 있지만, 향후 설비 투자를 확대하면서 수율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날 공장을 안내한 김준식 한국에코에너지 대표는 "지역 하치장에서 수거된 폐플라스틱을 수거업체들이 일차적으로 균질화 작업을 거친 후 이곳으로 집하된다"면서 "이 중에는 순수 플라스틱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물질이 섞여 있지만, 반응로에서 고온으로 찌면 결과적으로는 폐플라스틱만 유화시키고, 나머지는 슬러지로 탄화돼 나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원래 화장품 사업을 오랫동안 한 코스메틱 전문가다. 1990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한국화장품, 코리아나화장품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입지를 다져 온 소망화장품(현 코스모코스) 출신이다. 강석창 회장을 도와 함께 경영했다. 소망화장품은 2011년 KT&G에 편입됐다.
김 대표는 뮤겐스 등 헤어 코스메틱 분야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시장을 이끌었다. 뷰티분야에서 폐기물 관련 사업으로 급격한 전환을 함 셈인데, 이 배경을 묻는 질문에 김 대표는 "가장 큰 미덕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인데, 환경재생 분야야 말로 자연스러움을 되찾는 희열이 있었다"고 말했다. 종교적인 미션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한국에코에너지는 2022년 2월 설립된 신설 법인이지만, 짧은 시간 내에 기술력과 관련 설비를 마련하면서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환경부의 시책과 달리 이른바 혐오시설에 대한 인식 때문에 지자체의 호응을 얻기가 매우 힘들었다"면서 "폐기물을 기반으로 기름을 뽑는다는 컨셉을 이해할 때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5곳 이상의 지자체를 거친 끝에 현재 부지인 경북 영천군에 자리를 잡게 됐다. 열분해유는 기본적으로 폐기물 규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허가와 인근 주민동의가 필요한 사업인데, 김 대표의 지난한 설득 끝에 영천군과 주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에는 코스닥 상장사 진영의 지분 투자를 유치하면서 진영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현재 진영이 47%, 김 대표가 45% 가량의 지분을 쥐고 있다. 자본금은 17억5000만원이다. 모회사 진영이 플라스틱 소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는 생산-폐기-재생 식의 순환형 밸류체인이 구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코에너지를 비롯해 국내 열분해유 및 재생유 개발, 제조사들은 최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공급망을 넓힐 수 있는 호기를 잡았다. 석유사업법의 핵심은 석유정제공정에 재생합성원료 등 친환경 정제원료의 투입을 허용한다는 문구다. 석유화학업체들이 기존 정유 공정에 열분해유, 바이오원료 등을 적극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당연히 열분해유 제조사 입장에서도 판로가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이에 맞춰 한국에코에너지는 최근 국내 주요 석화사인 'H사'와 열분해유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열분해유 공급에 나선다. 초도 공급량과 매출액이 크지는 않지만 확실한 판로를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머지 석화사들도 올해 열분해유 도입을 공정에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판로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진영과 한국에코에너지는 현재의 캐파를 12기 총 120톤 규모(처리량 기준)로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4월 2기를 증설하고, 설비 투자를 통해 내년 8기 추가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상 300~500도에서 열분해가 이뤄지는 융용로가 3시간 동안 150도를 넘기지 않기 때문에 여러 기를 동시에 순차적으로 돌리는 것이 매출 확대에 적합하다. 결국 규모의 경제 싸움이라는 얘기다.
김 대표는 "현재 대규모 부지를 알아보고 있고, 기술적 미비점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술검토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올해 열분해유 양산 매출과 EPR(생산자책임재활용) 지원금에 더해 탄소배출권 사업을 덧대 업계 내에서 존재감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과 한국에코에너지는 IPO(기업공개) 시점을 2026년 경으로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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