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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과 갤러리의 품격 [thebell note]

서은내 기자공개 2024-03-12 07:30:09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1일 07: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화랑업계에서 'KYC'가 화두로 뜨고 있다. KYC는 '노우 유어 클라이언트(Know your client)'의 약자다. 갤러리에게 구매 고객의 신상을 확인하게 하고 신분 증명자료를 규제당국에 제출하게 하는 제도다. 미술품의 불법 거래 활용을 막고 시장을 투명화 하기 위한 선진 규준이다.

우선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는 미술품에 대한 KYC 규제가 엄격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한 독일계 갤러리 관계자에 따르면 당국에서 갤러리들에 직전 2년간의 고객 신상자료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현재 골동품에 한해 KYC를 적용하고 있으며 점차 전체 미술품을 대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갤러리들은 상대적으로 비즈니스가 자유롭다. 아시아권 내에서도 미술품거래 규제, 검열이 비교적 느슨한 곳이 한국이다. 아시아 허브로 불렸던 홍콩은 최근 급속히 중국화되면서부터 미술품 규제가 심해지고 있다. 서울은 미술품에 대한 관세 적용도 없고 일본 도쿄와 비교해서도 거래 절차가 간단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고해서 선진 규제 적용이 먼 얘기만은 아니다. 몇년 사이 외국계 메가갤러리들이 서울을 허브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 거점으로 서울이 주목되면서 이곳에 브런치를 내는 갤러리 행렬이 이어지는 중이다.

현재 서울에 둥지를 튼 해외 화랑으로는 미국계 리만머핀, 페이스갤러리, 글래드스톤갤러리, 영국계 화이트큐브갤러리, 독일계 타데우스로팍, 페레스프로젝트, 쾨닉, 프랑스 페로탕 등 10여개가 넘는다. 선진 규준에 익숙한 갤러리들이 시장에 자리하면서 한국 화랑들도 흐름을 따라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거래 투명성에 대한 눈높이가 점차 상향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글로벌 갤러리들은 특히 작품을 거래할 때 시장가를 공개, 비교하며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갤러리들 입장에서 가격을 쉬쉬하기는 어렵다.

한 미술투자 전문가는 "프리즈 등 국제적 아트페어가 서울에서 열리면서 선진 기준들이 스며들고 있다"며 "특정 그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없는 척 수장고에 숨겨뒀다가 가격이 오르면 작품을 진열하는 등 과거의 주먹구구식 갤러리 비즈니스는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미술계 곳곳에는 신진 작가들을 발굴, 선투자하는 수많은 갤러리스트들과 이들을 뒷받치는 든든한 컬렉터들의 조력이 숨겨져있다. 화랑이 탈세, 비리의 장소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럼에도 미술품 소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쉽다. 선진 기준의 확대가 미술품 거래의 격을 높이고 조력자들을 빛나게 할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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