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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글로벌 공급망과 자원 확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05-13 10:45:13

이 기사는 2024년 05월 13일 10: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별 글로벌 분업과 기술적 글로벌 분업이 서서히 축소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 수준까지 가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를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리 보여주었다. 글로벌 공급망 축소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에너지와 광물, 곡물 등 1차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확보에서 일본과 함께 가장 불리한 조건에 있다.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수입해야 하는데 생산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 100% 해상으로 운송받는 원유의 경우 거의 70%를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는데 거리도 멀 뿐 아니라 페르시아만, 인도양, 말라카해협,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 지구상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곳들을 거쳐서 와야 한다.

지금까지는 모든 해상 운송로가 미국 해군의 보호를 받았다. 향후에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미국이 에너지를 완전히 자급하게 되면서 엄청난 돈을 들여 굳이 세계의 해양 질서 유지를 담당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은 자국 선단을 보호할 수 있는 원양 해군력이 있다.

석유는 현재 약 60%가 모빌리티에 쓰이고 20%가 석유화학제품 생산에 쓰인다. 석유화학제품의 생산을 위해서는 석유를 정제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정제능력을 보유한다. 그러나 공급 루트가 불안정해지면 정제를 위해 한국을 거치는 물량은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제도 글로벌 분업의 혜택으로 위치에 별로 구애받지 않았다. 석유정제 글로벌 분업이 축소되면 소비지 가까운 곳에서 정제하는 추세가 늘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처리 손실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지정학자 피터 자이한이 알려주듯이 석유 문제는 에너지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식량 생산에 파급효과가 온다. 첫째, 트랙터, 트럭, 화물열차, 벌크선 등 식량의 생산과 운송을 담당하는 모빌리티가 영향을 받는다. 둘째, 관개 시스템과 제분 시설의 가동에도 영향이 있다. 셋째,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는 석유를 원료로 만든다. 넷째, 비료는 석유나 천연가스로 만들어지는데 중국과 같이 토질이 열악한 곳에는 다섯배가 투입되어야 한다. 비료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옥수수는 거의 절반이 가축 사료다. 화학비료가 없다면 세계의 식량 생산이 1/3, 심지어 1/4로 떨어진다. 다섯째, 에탄올의 40% 정도가 석유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덤이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배터리 소재 코발트는 70%가 중앙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생산된다. 콩고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하고 위험한 나라일 것이다. 니켈과 구리 광산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코발트를 중국 상인들이 비정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확보한다. 중국은 14개 코발트 생산지 중 8개를 장악하고 있고 모두 본국으로 들여와 제련하는데 코발트는 90% 이상이 중국에서 제련된다. 미래에는 우리가 직접 콩고에 들어가 소재를 확보해야 될지도 모른다.

정부와 기업들이 향후 달라질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글로벌 공급망이 종식된 세계에서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래 예측과 대응 전략을 직접 챙겨야 한다. 과거 부정적으로 평가받았던 자원외교가 새로 조명될 수도 있다.

대기업들은 자체 역량으로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견기업부터는 힘에 부칠 수 있다. 개발 경제 시대에 에너지, 식량, 소재 분야에서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크게 활약했던 종합상사가 다시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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