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감정 사각지대]엇갈린 진위감정…영리 vs 비영리 차이?④ 화랑협회 진위 소견 번복 논란…감정위원 전문성 부족·이해상충 이슈 재점화
서은내 기자공개 2024-11-20 07:50:26
[편집자주]
미술품 물납제 시행, 미술품 담보대출 수요 등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감정 서비스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인프라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미술품 감정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는 업계의 오랜 난제로 되풀이되는 중이다. 때마침 감정 관련 법이 개정되며 정부가 감정체계 손질을 예고하고있다. 더벨은 현재 미술품 감정과 관련된 업권의 논쟁과 구조적 문제를 짚어보고 제도 변화의 방향성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8일 15: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양대 감정기관의 엇갈린 진위감정이 미술품 유통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기관별 엇갈린 판정도 문제이지만 과거 진품으로 감정된 작품에 대해 동일 기관에서 위작으로 감정을 내리면서 문제는 첩첩산중으로 들어간다. 진품 감정서를 믿고 산 수억원대 작품이 제자리에서 위작으로 판정받게되니 소장자 입장에서는 기댈 곳이 없어지는 경우다.근래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저조한 가운데 이같은 진위시비는 시장의 불안감을 더 키우고 있다. 그나마 시장에서의 거래량이 많은 이우환 작품을 놓고 양대 기관의 감정소견이 엇갈리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혼란이 큰 상황이다. 국내 진위감정계의 양대 기관은 한국화랑협회의 감정위원회(이하 위원회)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이하 센터)다.
최근 센터에서 진품 판정한 '선으로부터'를 위원회에서 위품으로 판정한 사례가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해당 작품은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시절 진품 판정된 작품이란 점이 더 문제가 됐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한국화랑협회가 공동운영한 곳으로 위원회의 전신과 같은 기관이다. 2019년 평가원이 둘로 쪼개어지면서 위원회와 센터로 자리했다.
한 감정기관 관계자는 "과거에도 화랑협회 위원회에서 김창열 화백의 1970년대 작품을 프로비넌스(이력) 부족으로 위품으로 감정했다거나 프로비넌스 발견 후 진작으로 소견을 번복한 적이 있었다"며 "기관이 의견을 번복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진품 소견을 위품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비영리 '화랑협회'는 보수적, 영리추구 '센터'는 후한 경향?
양 기관 견해가 갈리는 지점에서 또하나의 흥미로운 포인트는 감정기관별 성향에 관해서다. 판정이 엇갈리는 상황의 대다수가 센터는 진품으로, 화랑협회 위원회는 위품으로 견해를 내리는 경우였다는 점이다. 화랑협회 위원회가 더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화랑협회의 감정서를 보다 신임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센터가 화랑협회보다 유연한 편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에 대해 비영리 기관인 화랑협회 위원회와 영리기관인 센터의 차이로 보는 해석이 나온다. 센터는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만큼 후한 감정소견을 내릴 유인이 크다는 의미다.
한국화랑협회 관계자는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료도 크게 낮다"며 "확실하게 진품이라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의견을 잘 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정반대의 얘기도 들린다. 한국화랑협회 위원회는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스트, 딜러가 중심이 돼있고 감정 작품과 직접적인 이익, 이해관계로 더 많이 얽혀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화랑협회가 더 객관적이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관계자는 "센터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인만큼 더 전문성을 기해 판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라며 "비영리 대 영리기관의 차이로 해석하는 것은 어패가 있다"고 맞섰다.
◇ 감정업계 전문성 부족이 최대 난제
결과적으로 보면 어느 한 기관의 말에만 무게를 두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제3의 감정기관 관계자는 "비영리, 영리의 측면으로 감정의 신뢰성을 논하기는 어렵다"라며 "다만 의뢰된 작가, 작품에 대해 얼마나 전문적인 소양과 지식이 있는 전문가를 감정위원으로 채택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국내 진위감정 영역에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또다른 미술품 유통업체 관계자는 "현재 감정 전문가가 한정적이고 개개인마다 문제가 많다"며 "어떤 감정위원들은 위품으로 감정하고 본인에게 해당 작품과 비슷한 다른 작품을 싸게 팔도록 유인하기도 하는 말도 안되는 일들도 벌어진다"라고 말했다.
엇갈린 감정소견으로 벌어질 분쟁을 조율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 주도의 기관이 감정 영역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반대 시각이 강하다. 대신 민간 주도의 분쟁 해결 기구 필요성은 언급되고 있으나 현재 국내 사정으로 보면 그 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민간 감정기관이 각자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는 양상이며 서로의 신뢰성이 약한 상태"라며 "전문가도 적을뿐더러 어느 한곳이 주도해야 회의체를 만들 수 있을텐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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