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8년 11월 17일 09: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포커나 화투를 할 때, 나의 '패(牌)' 하나라도 상대방에게 노출되면 그 게임을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금융시장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M&A와 채권 발행 등의 '딜(Deal)'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간 가격 싸움은 서로의 패를 철저히 숨기며 진행된다. 패를 보인 쪽은 가격 협상에서 불리해져 협상 주도력을 잃게된다. 결국 딜이 끝날 때까지 상대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정부가 지난 9월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조성용채권(이하 외평채) 발행을 하려고 했을 때가 딱 그랬다.
9월 금융위기설을 진압하겠다고 당차게 나설 때까지는 좋았다. 국내 금융회사나 일반 기업들이 섣불리 못 나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솔선수범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자기 '패'를 미리 까놓고 상대방을 찾아 떠났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는 "가산금리 180bp 정도를 생각하고 있으며, 200bp 이상으로는 힘들다"고 속내를 공개했다.
물론 투자자들은 200bp 언저리로 협상을 진행했다. 정부가 그 정도까지는 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가격 협상의 여지를 잃었던 셈이다.
정부는 또 하나, 패를 보고도 읽지 못했다. 바로 리먼 브러더스. 정부가 지분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 협상 중단을 선언, 리먼의 파산 가능성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던 것.
산은이 인수를 중단하고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에 들어가면서 까놓았던 패마저 더 엉망이 됐다. 가산금리가 200p 이상으로 급등한 것. 외평채 발행 주관사로 리먼브러더스가 포함된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정부는 내년에 외화표시 외평채를 60억달러 규모(한도)로 찍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보다 10억달러가 늘어났다.
그런데 벌써부터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는 대한민국 외평채 발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올해보다 더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또 늘어난 액수만큼 발행에 대한 절실함이 더해진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해외 투자자들은 다른 한국물(기업 또는 금융회사)투자를 미루고 다 외평채에 달려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외국계 IB 한 관계자는 "60억달러 발행 한도를 밝히는 것은 예산을 받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해외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년의 패 하나는 정부가 일단 까놓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패를 보여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정부 당국자들이 보다 노련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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