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기능통화제 도입 논란 회계법인 "외화 기능통화 도입해야"…수은 "도입 실익없다"
이 기사는 2010년 01월 06일 10: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앞둔 수출입은행이 때아닌 기능통화 논란에 빠졌다. 논란의 핵심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수출입은행의 특수성을 인정할 지 여부다.
5일 금융권과 회계법인 등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최근 모 회계법인에 IFRS 도입을 위한 컨설팅을 의뢰한 결과 외화 기능통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특수성을 인정받아 2011년 IFRS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외화로 회계장부를 새롭게 작성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 "외화자산 많다 vs. 원가 원화결제·국책은행 특수성"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에서 IFRS를 도입할 경우 기능통화를 기준으로 장부를 작성해야 하고, 그에 따른 시스템 전환에 시간이 소요된다고 해서 준비기간 1년을 주기로 했다"고, 도입 시기가 늦어진 사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회계법인에서 1차로 컨설팅을 받아보니까 외화부채와 외화대출자산이 많아 외화 기능통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면서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외화 기능통화 도입의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는데, 2차 컨설팅을 거쳐 2012년까지 최종적으로 기능통화 도입 여부를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능통화'란 영업활동이 이뤄지는 주된 경제 환경의 통화를 말한다. 예컨대 주로 해외에서 미국 달러화를 기반으로 영업이 이뤄지는 해운회사의 경우, 미 달러화가 기능통화가 된다. 기능통화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재무제표를 표시할 때 사용하는 통화인 표시통화(보고통화)가 있는데, 정부는 작년 기능통화의 조기도입을 허용했다. IFRS는 기능통화와 표시통화 개념을 구분해 사용하며, 기능통화의 결정과 관련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수출입·해외투자·해외자원개발 등에 특화된 국책 금융기관이다. 은행 영업의 대부분이 대외거래라서, 총자산(2008년말 기준 35조9819억원)의 73.2%(26조3725억원)가 외화자산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대출금 가운데 80.0%가 외화대출금이다.
A회계법인 관계자는 "차입과 대출이 주로 외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미달러화를 기능통화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전했다.
B회계법인 관계자는 "외화자산이 많긴 하지만, 자산의 리스크가 국내 기업에게 있는 만큼 원화를 기능통화로 해야 한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금융지원을 위한 자금조달과 대출이 대부분 외화로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기능통화로 외화를 채택하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 인건비 등 각종 노무원가가 원화로 결제된다는 점에서 원화 기능통화가 합당하다. 은행업의 특성상 외화자산과 외화부채의 갭을 조정한다는 점에서는 외화 기능통화 도입의 실익도 없다. 수출입은행 지분의 69.04%를 보유하고 있는 정부가 외화 기능통화 도입에 찬성할 가능성도 극히 낮아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회계기준서를 그대로 따르자면 은행 매출의 대부분이 외화라서 기능통화로 외화가 맞겠지만, 원화로 나가는 인건비를 외화로 환산하려면 장부관리가 무척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수출입은행에 수조원을 출자한 정부가 외화 회계장부를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해운업종만 기능통화 도입…항공·정유 등은 외면
작년 정부가 기능통화 조기도입을 허용한 이후, 현재까지 기능통화제를 도입한 기업은 해운회사 4곳에 불과하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STX팬오션, 봉신(옛 선우에스티) 등은 작년 결산에서 기능통화를 도입해서 외화환산손실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해운업은 모든 거래가 미 달러화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외화 기능통화로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것이 경제적 실질 반영에도 안성마춤이다.
하지만 외화부채가 많아 기능통화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됐던 조선업과 항공업은 기능통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올해 IFRS를 조기도입할 예정인 삼성전자나 LG그룹 계열사 등도 기능통화로 외화를 도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이나 항공업종은 선박이나 항공기 도입에 따른 부채가 외화긴 하지만, 인건비가 원화로 지급되고 항공업은 해외 매출이 현지 통화로 결제된다"면서 "원화를 달러로 바꿔 회계장부를 작성하면 복잡하고 실익도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 역시 해외 매출 비중이 높긴 하지만, 인건비 등 원가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통화는 원화다. 이 처럼 기능통화 결정에 상반된 요인이 작용할 경우에는 회사의 경영진이 기업의 실질에 맞도록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의 사례가 시사적이다. 정유사의 경우 원유도입은 미 달러화 기준으로 이뤄지지만, 수출비중이 매출의 50%에 달한다.
정준희 안진회계법인 IFRS그룹 상무이사는 "기능통화는 판단의 문제"라며 "기능통화 결정의 주요지표인 매출과 원가가 상반된 결론을 제시한다면 경영진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회계제도실 관계자는 "기능통화는 기업의 환익스포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통화가 무엇이냐는 것"이라며 "회계기준서의 외관만 봐서는 안되고, 투자설명회(IR)를 하거나 사업계획을 짤 때 어떤 통화를 쓰느냐는 것도 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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