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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기술 [thebell desk]

김용관 기자공개 2024-03-11 09:15:03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7일 07: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문제로 온 나라가 사달이 났다.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7000여명에 대해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반발해 일부 전임의와 교수가 집단행동에 동참하면서 의료 공백은 더 커지고 있다. 갈등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히 의료소비자들이다.

의료계는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으며 의료취약지나 생명을 살리는 진료과목에 대한 기피는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인력 배치’ 불균형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국민 의료비 증가로 돌아올 것이라고도 경고한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의사 과잉 공급으로 인한 경쟁과 수익 감소에 대한 기득권자의 우려 때문으로 보고 있다.

모든 이익집단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저마다의 이익과 그 침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것 자체만으로는 비난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사회는 공동선의 영역이 없으면 국민에게 결코 좋은 삶을 보장할 수 없다.

# 지난 1월말, 대통령이 되면 임기 첫날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우리 기업들은 난리가 났다. 워싱턴 소재 한국 사무소들은 진위와 맥락을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고 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 트럼프의 재대결이 펼쳐지는 올해 한국 기업들과 정부의 대응 방식은 2016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땐 트럼프노믹스를 전혀 모르고 당했지만 이번엔 제대로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실제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국내 주력기업들의 올해 대미 로비액이 사상 최대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특히 바이든 정권의 수혜 업종으로 불리는 배터리·전기차·반도체 및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들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정책 변동성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미국 워싱턴 현지에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만 사무소를 뒀으나 현재는 중견기업까지 가세해 40여개사가 사무소를 설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 2024년 1월27일자로 2년 유예된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적용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법이다. 최대 7년 이하의 징역과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까지 적용되면 중소기업 경영자는 이중 처벌을 받을 우려가 큰 상황이다.

대기업들은 이보다 앞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2021년 심각성을 인지하고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형사처벌로 인한 경영책임자의 부재 뿐만 아니라 신용도에 문제없는 기업조차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자금줄’을 끊어버리는 심각한 악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기업 입장에선 가혹한 정책이었지만 대대적인 조직 및 인력 재편, 안전예산 대규모 확대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 정부 정책 혹은 글로벌 규제 변화는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책 변화는 기업의 매출, 이익, 비용, 위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들은 정책 변화를 수용하거나 혹은 이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호기로 삼기도 한다.

기업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challenge(도전, 시험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평소와 다른 변화, 혹은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부담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눈앞에 닥친 도전을 모른 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극복하거나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의료계의 의대 정원 확대 반대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정부 정책을 대놓고 반대하는 직역은 의료계가 유일한 듯하다. 일상에서 접하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지방의료 부재, 전공의들의 과도한 업무 등 변화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리 주변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집단은 거의 없다. 변호사나 회계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집단인 검찰 조차도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의대 정원 이슈는 겨우 변화의 트리거를 당겼을 뿐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병을 직접 치료하는 의사인 '임상의'의 존재가치는 급속도로 줄어들지 않을까. 영화 엘리시움(2013년 개봉)에선 백혈병 환자도 스캔 프로그램을 통해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됐다.

시기의 문제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역할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뛰어난 인재인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병원만 있는게 아니다. 유전자 공학, 디지털 헬스케어, 바이오제약 소재개발 등의 기초 의료 분야에서도 의사과학자로서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다.

"변화 무쌍한 자연 환경에 적응한 생물은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돼 사라진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현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생존과 도태의 차이는 응전을 하느냐 응전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초유의 도전에 직면한 의사들은 우리 기업인들이 어떻게 '응전'하는지 그 내용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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