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0월 16일 06: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투자 이후 수년을 기다린 포트폴리오 기업의 회수 성과가 상장 당일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판가름납니다. 누가 먼저 기업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른 라운드에 투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장일 고점에 매도하면 잭팟이고 아니면 그저 그런 투자가 돼 버리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장기적 안목으로 초기기업에 투자하고 싶겠습니까.”최근 만난 한 벤처캐피탈(VC) 심사역의 한탄이다. 창업 초기 투자해 애지중지 키워 온 포트폴리오 기업이 증시에 입성했고 상장 직후 공모가격 대비 300%에 달하는 높은 주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고점에서 주식을 매도하지 못했다.
결국 공모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회수를 마쳤지만 투자금 대비 회수 수익 멀티플은 상장일 고점 매도에 성공한 후기투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자기간을 고려한 내부수익률(IRR)로 비교하면 후기투자자 쪽이 월등히 높다.
상장일의 급격한 가격변동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상장일 가격변동폭을 확대한 이후 그 정도가 심화했다. 지난해 말 이후 증시에 입성한 기업 대다수가 상장일 주가 급등을 경험했다. 공모가격 대비 400%의 가격을 기록하는 ‘따따블’도 6곳이나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포트폴리오 기업의 상장일이 되면 VC 사무실에선 클릭 전쟁이 벌어지기 일쑤다. VC들 사이에선 발품 팔아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매도의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자조섞인 농담이 나오고 있다.
상장일 고점 매도로 재미를 본 VC 심사역들은 초기기업을 발굴하는 일보다 후기라운드 참여에 열정을 쏟기 마련이다. 상장 가능성이 높은 포트폴리오의 구주 매입에만 관심을 갖는 심사역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VC로서 창업 초기 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한다는 사명과 자긍심을 가진 이들도 눈 앞에 놓인 투자 성적표를 보면 허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다행인 건 상장일 주가 급등의 흐름이 조금씩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100%가 넘었던 상장일 평균 공모가대비 주가 수익률은 올해 3분기에는 21.4%로 낮아졌다. 공모가격 대비 상장 첫날 주가가 낮게 형성된 기업들도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상장일 주가 급등 현상이 줄어드는 건 당장 VC의 펀드 운용 수익률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VC의 생태계에는 분명 긍정적일 것이다. 매도의 기술보다는 투자 실력이 VC의 성과를 가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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