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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가 만드는 '새로운 한일관계' [thebell desk]

최윤신 벤처중기1부 차장공개 2024-11-08 08:27:16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7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만난 일본의 대형 벤처캐피탈(VC) 대표가 한국의 벤처 생태계를 두고 '선배'라고 칭하더군요. 양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례적인 일이죠. 그만큼 변화가 간절하다는 것 아닐까요."

최근 만난 한 VC 대표는 일본의 벤처 생태계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실제 몇 년 전까지 스타트업 불모지로 불렸던 일본은 최근 눈에 띄게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기업 주도 경제구조가 공고한 일본은 그간 벤처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적 투자문화로 초기단계의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못했고 창업을 지원하는 제도도 미비했다.

그러나 2022년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하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창업을 장려하고 벤처투자를 키우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단 게 VC업계의 평가다.

변화의 과정에서 일본이 롤모델로 삼은 건 다름아닌 한국이다.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이 빠르게 벤처 생태계를 육성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 공공연히 나왔다. 한국의 제도를 연구했고 한국의 스타트업과 VC에 주목했다.

일본은 금새 글로벌 VC가 가장 주목하는 시장 중 하나가 됐다. 글로벌 최고수준인 소재·부품·장비 분야 기술 경쟁력이 큰 강점으로 꼽힌다. 디지털전환의 미진함은 오히려 투자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빠르게 추격해오는 일본 벤처 생태계의 성장을 두고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칫 '아시아 창업 허브'의 자리를 일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수십년간 경쟁관계를 형성해 온 산업 역사를 돌아볼 때 근거없는 우려로 치부할 순 없다.

하지만 제조업의 역사를 벤처 생태계에 단순히 대입하는 건 무리가 있다. 스타트업과 VC의 성장 문법은 기존의 제조업과 다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과 VC는 국경을 초월해 자본을 섞어 혈연을 맺는데 익숙하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한 스케일업에 능하다.

양국의 VC들은 이미 전에 없던 '혈연'을 활발히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대형 VC들은 앞다퉈 일본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현지에 법인을 만들고 일본 VC와 공동운용하는 펀드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 VC들도 한국의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기업 리벨리온이 앞서 일본 디지다이와벤처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게 대표적이다. 양국 VC들의 활발한 협업이 전에 없던 협력적 한일관계를 만드는 첨병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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