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06일 06: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사의 계절이다. 11월말 12월초, 기업들은 일제히 연말 인사를 단행한다.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임원 인사, 조직 개편, 전보 등 일련의 인사 조치가 숨가쁘게 진행된다. 그 어느 때보다 피를 말리는 시기다. 인사가 끝나면 한해 농사가 완전히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승진자들에 대한 축하 인사가 넘쳐난다. 특히 새로 임원으로 승진해 '별'을 다는 사람들에게는 축하 문자와 전화, 화환이 줄을 잇는다. 수십년을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 새로 '별'을 단 사람들이니 축하받아 마땅하다.
낙엽지는 쓸쓸한 계절, 누구는 떠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임원을 달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다. 혹은 임원이라도 '구조조정' 혹은 '세대교체'의 명분으로 계약 연장에 실패한다.
물러나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구는 할만큼 했으니 만족하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런가. 퇴임자들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 있다. 낙엽을 다 떨구고 앙상해진 나뭇가지 마냥 휑하다.
최근 식사 자리에서 만난 대기업 임원의 말이 와닿는다. "인사를 왜 한참 추운 연말에 하는지 모르겠다. 날씨도 추운데 회사까지 그만두면 마음이 훨씬 안좋다. 차라리 8월 한여름에 잘리면 그나마 충격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농담삼아 한 말이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한화그룹은 대기업 중 유일하게 8월에 사장단 인사를 한다. 올해는 8월29일 인사를 단행했다. 이후 9~10월에 임원 인사를 순차적으로 실시해 조직 개편을 마무리한다. 한화그룹이 처음부터 8월에 사장단 인사를 실시한 건 아니다. 2017년까지는 여느 대기업과 비슷하게 12월에 차기년도 인사를 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기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 해 9월 한화큐셀 등 3곳의 대표이사를 선임하며 조기 인사의 포문을 열었다. 국내 주요 그룹들이 통상 12월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3개월 가량 빠른 조치였다.
2018년의 조기 인사는 일회성이 아니었다. 2020년까지 3년 연속으로 9월에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2021년부터는 8월로 한달 더 앞당겼다. 8월 인사가 완전히 안착한 모습이다. 회사측은 "신임 대표이사 체제 하에 최적의 조직을 구성해 차기년도 사업 전략 수립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8월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화 방식이 상식적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은 9~10월부터 차기년도 사업전략 수립에 나선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12월에 교체되면 전임 사장이 수립한 전략을 신임 사장이 수행하는 엇박자가 생긴다. 함께 호흡을 맞출 임원 선임이나 조직 구성도 늦어진다. 과거 사례를 보면 취임 후 1년간은 그냥 헛바퀴 돌 듯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바뀌면 전략도 바뀌는 법. 8월 인사 이후 4개월간 신임 사장이 원하는 조직을 구성하고 사업 전략을 수립하면 새해 1월1일 한치의 오차없이 계획대로 출발할 수 있다는게 한화측 설명이다. 한화는 급변하는 사업 환경 속에서 이같은 엇박자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한 듯하다.
가인 최백호는 "낙엽지는 가을엔 떠나지 말라"고 노래했다. 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8월 인사가 더 나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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