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1월 31일 07시5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외이사가 거수기면 국무위원도 거수깁니까?”이른 아침부터 참석한 한 조찬 포럼에서 청중들의 잠을 깨우는 발언이 장내를 울렸다. 그의 발언에 누군가는 웃었고 요즘의 시국을 의식해 쉬이 웃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그가 한 발언의 요지는 시국과 무관하게 ‘이사회 안건에 대한 반대가 없다고 해서 이사회 내부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반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사외이사가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건 과하다는 말이었다.
금융사, 일반 기업 등 다수의 기업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A 교수도 이와 비슷한 얘길 했다. 이사회에 반대가 나오지 않는 건 사전에 치밀한 조율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사회 사무국은 이사회가 열리기 한참 전부터 각 사외이사를 개별로 만나 의견 조율을 한다. 안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다시 안건에 이를 반영하는 식으로 반대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조율을 해서 ‘완전무결’한 이사회가 진행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업 이사회에서 반대가 나와도 되지 않겠냐며,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그냥 '반대'로 의견을 기재하고 진행하자고 얘기해도 '굳이 흠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완전무결한 이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사회 사무국은 이사회 경영을 뒷받침하는 핵심 부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비용적인 측면이 문제인가 싶었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사내에서 인력을 수급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성과지표(KPI)를 잘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전문성을 쌓기도 애매해 ‘한직’이라는 인식이 깔린 탓이다. 한 취재원의 지인이 이사회 사무국에서 일하며 ‘고급 간식 전문가’가 됐다는 얘길 듣고 마냥 부러워했는데 역시 현실은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이사회 사무국의 노력은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결과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사회는 왜 완전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는다.
어릴 적 뒷산에서 밤을 주워오면 꼭 벌레 먹은 밤들이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밤이 맛있는 거라며, 벌레들이 맛있는 밤을 제일 잘 안다고 하셨다. 실제로 먹어보면 그 말씀 때문인지 벌레 먹은 밤이 유독 달게 느껴졌다. 이사회 안건에 대한 반대가 어떤 점에서는 흠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를 위한 여러 의견을 내고 토의를 거칠 수 있는 회사라면 결국 좋은 회사라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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