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25일 07시03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이름 붙이기(naming)’는 단순히 사물을 부르는 행위를 넘어 존재와 개념을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세상에 없던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거나 대체하는 기계·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자리 잡았다.만약 이 단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AI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이를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자동화 시스템 쯤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처럼 AI의 영향력이나 책임, 사회적 파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AI라는 이름이 생기면서 우리는 이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고 법적·윤리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언어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이같은 주장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명명’의 힘과 그 파급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소액주주’와 ‘비지배주주’라는 용어도 그렇다. 얼마 전 만난 한 사외이사는 소액주주 대신 비지배주주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액주주’라는 말이 자칫 '소액’에 방점이 찍혀 주주의 영향력이나 중요성을 축소하는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액주주가 스스로를 ‘작은 존재’로 여기게 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들의 목소리와 권리를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제시된 ‘비지배주주’는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단순히 적은 지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식의 규모와 상관없이 경영권이 없는 독립적 주체임을 명확히 한다.
무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상법 개정안을 떠올려 보면 우리 사회는 이미 ‘비지배주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법은 사회적 권력과 인식의 변화가 선행된 뒤에야 비로소 변화된 현실을 제도화하고 규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법은 아직이지만 이미 현실에서는 비지배주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있다. 그들이 모인 단체들은 경영 감시와 견제, 권리 행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이름을 가진다는 건 존재의 무게를 사회가 인정하는 일이다. 이제 ‘비지배주주’라는 이름 아래 더 많은 목소리가 꽃처럼 피어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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