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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에서 소외된 이맹희와 'CJ의 분가' 계열분리 과정의 소외감, 기명주식 배분에서도 배제

문병선 기자공개 2012-06-07 11:13:16

이 기사는 2012년 06월 07일 11: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가 상속소송은 법정 안에서의 사실관계 다툼과 더불어 법정 바깥에서의 '진실'도 조명받는 사건이다. 소송의 본질은 ‘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맹희는 공식적으로 재계에서 떠난 1973년 이후 40여년만에 가장 치열한 전쟁을 선포했다. 가문 내부를 겨냥한 '골육상쟁'이다. 이맹희가 소송을 제기한 진짜 이유에 초점이 맞춰지는 까닭이다. 설득력 있는 이유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까지 행동해야 했던 데는 꽤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범삼성가 분가 과정, 제일제당만 달랐던 점

첫번째 이유로는 이맹희가 이병철의 상속재산 분할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는 점이 거론된다.

적절한 사례는 제일제당의 분가(分家)다. 1993년 6월 삼성그룹에 의해 최초로 발표된 이 계획은 얼핏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이맹희 몫을 떼어준 것으로 보여진다. 이건희는 손복남(이맹희의 부인)에게 제일제당 지분을 주고, 그 대신 삼성은 손복남의 안국화재 지분을 취득하는 '지분 스왑' 방식에 의해 분가를 이루는 계획이다.

제일제당 분가(1993년)

그러나 이맹희는 이를 상속재산의 형제간 분할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선대회장의 유지를 거스른 행동으로까지 봤다. 재산상으로는 손복남의 안국화재 지분을 삼성에 넘겨주고 그 대신 제일제당 지분을 받는 것이어서 변화가 없다. 결코 재산이 늘어났다고 볼 수 없는 거래로 인식할 수 있는 정황이다.

이맹희는 1993년 8월 이에 대해 "삼성측에서 제일제당 분리에 대해 사전에 의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선대 회장의 유언과는 다르며 동생(이건희)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라는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안국화재는 따지고 들면 손복남 몫으로 분류되던 회사다. 손복남은 이병철 타계 직후 안국화재 지분 15.6%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 최대주주다. 동방생명이 5.2%, 상업은행이 2.0%, 기타 삼성가 특수관계인이 5.1%를 각각 가지고 있었고 삼성 계열사였으나, 경영은 손복남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병철 타계 직후 다수의 언론은 "이병철이 손복남에게 안국화재를 배분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이병철이 안국화재를 인수했던 1958년 이후 이 회사는 줄곧 손씨 집안에서 장악해 왔다. "초대 사장은 이병철의 사돈이자 손복남의 선친인 손영기씨다.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냈던 손영기는 당시 손보업계의 주력 상품이었던 미곡보험을 대거 끌어들이면서 안국화재를 선두그룹으로 올려놓았으며 그의 맏아들인 손경식 제일제당 부회장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매일경제 1993년 10월5일)

그래서인지 이맹희는 제일제당 분리 발표 직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이 회장(이건희)이 보유한 제일제당 주식은 증여 형식을 통해 이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년 안에 제일제당 외에도 그룹 계열사 중 2~3개를 추가로 이양할 것임을 그룹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재현 이사(당시 삼성전자 이사)를 중심으로 안국화재, 제일제당 등을 묶은 독립그룹을 구성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건희의 결재는 기존 예상과 다른 '지분스왑'이었다. 그리고 이재현의 몫은 제일제당 한 곳에 국한됐다.

전주제지 분가(1991년)

반면 이인희와 이명희는 그들의 뜻대로, 그리고 일반의 예상대로 전주제지와 신세계를 가지고 분가했다. 두 회사는 1991년 최초 분리 계획이 나왔다. 이건희는 본인의 지분과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시장에서 내다 파는 식으로 이들 형제와 계열 관계를 청산하고자 했다.

신세계 분가(1991~1992년)

조선호텔의 경우 이건희는 이명희에게 중앙개발(삼성에버랜드)이 갖고 있던 지분(37.4%)을 포기하면서까지 넘겨줬다. 물론 이인희 몫으로 분류되던 호텔신라가 삼성그룹 계열사로 남게됐고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있었으나 이런 소소한 이견은 곧 무마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측은 생각이 다르다. 제일제당은 삼성의 3대 모태기업(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 중 하나다. 그런 회사를 떼어 내 줬다. 또 제일제당은 그 당시 동방생명 등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다량 가지고 있었다. 이들 계열사 지분은 제일제당이 CJ로 바뀐 후 사업의 밑천이 됐다. 배려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현(이맹희의 장남)과 이건희는 제일제당 분리 계획이 발표된 지 1년여가 흐른 1994년말~1995년초 분리계획의 실천 문제를 두고 큰 갈등을 보여줘 묵은 앙금을 보여준다. 이건희는 이학수 삼성화재 부사장을 1994년 10월26일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발령을 냈다. 제일제당측은 "경영권을 빼앗으려는 시도"라고 격렬히 저항했다. 일각에서는 이학수의 발령을 '10·26 쿠테타'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학수는 그해 12월 다시 삼성화재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기명주식의 상속 과정에서도 '소외'

형제간 기업체 분할은 이병철의 평소 유지를 현실화 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형제간 신뢰와 실천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는 상속재산 처리 문제와는 다르다. 그런데 계열분리 문제를 빼고라도, 다른 상속재산의 분할 문제에서도 이맹희는 형제들로부터 소외받아 왔음을 엿볼 수 있다.

이병철의 상속재산은 '기명주식'과 '차명주식' 그리고 '부동산'으로 나눌 수 있다. '차명주식'은 요즘 문제가 된다. '기명주식'은 이병철 타계 이후 약 2년만인 1989년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이 '기명주식' 처리 과정에서 이맹희는 소외됐다.

그 당시 국세청에 신고된 이병철의 상속재산은 모두 270억원 규모다. 이 중 기명주식은 165억원 어치다. 이건희는 120억원 어치(삼성물산, 제일모직, 전주제지, 제일제당)를, 이인희는 25억원 어치(전주제지) 주식을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희도 37억원 어치(신세계)를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시점에 따라 주식 평가액은 다소 차이가 난다. 나머지 100억원의 상속재산은 상속인별로 분할한 뒤 이를 다시 모아 이병철 추모 재단을 설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는 지난 4월말 최근 소송과 관련 동생 이건희를 향해 "건희는 현재까지 형제지간에 불화만 가중시켜 왔고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며 "한푼도 안주겠다는 그런 탐욕이 이 소송을 초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건희 회장은 앞서 "선대 회장 때 다 나눴다. 그래서 각자 다 돈을 갖고 있고 CJ그룹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 욕심이 나는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왜 이번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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