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녹이기 이어 사전매출까지 '점입가경' 수요예측 전 호가, 미매각 인수 부담 '털기'…비우량채 중심 확산
황철 기자공개 2012-06-29 11:10:14
이 기사는 2012년 06월 29일 11: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요예측 도입의 목표 중에는 국내 회사채 시장의 대표적 폐단 중 하나인 사전매출을 근절하는 게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요예측 전에 금리를 제시하고 투자자 물색에 나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메신저를 통해 사전 영업에 나서는 것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사전매출은 수요예측을 통한 북-빌딩(Book Building) 자체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우량채 중심으로는 수수료 녹이기가, 비우량채에서는 사전매출이 다시 횡행하면서 회사채 시장 선진화 방안의 효용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 수요예측 무력화, 사전 금리 확정 매출
사전매출은 대부분 미배정이 확실시되는 비우량채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시장참가자의 야후 메신저 상에는 수요예측을 하기도 전에 최종 호가를 제시한 매출 정보가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다.
인수단으로 참여한 증권사가 미매각을 염두하고 사전에 세일즈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자기 인수물량만큼 매출한도를 적시해 수요를 모으고 있다. 대부분 비우량채가 중심이고 금리는 미배정 발정 시 일반적으로 결정되는 밴드 상단에서 형성돼 있다.
모 증권사는 지난주 초부터 금호석유화학 회사채를 3년물 4.20%, 5년물 4.70%에 매출하겠다며 사전 수요를 모으기 시작했다. 수요예측일인 27일보다 열흘 가량이나 앞선 일이다. 해당 수익률은 금호석유화학이 제시한 희망금리의 끝단이다. 금호석유화학은 142회차 채권의 밴드금리로 3년물 4.00%~4.20%, 5년물 4.50%~4.70%로 설정했다.
입찰 결과 예상대로 전액 미배정이 발생했다. 수요예측 참여 수량은 단 한 건. 3년물 4.30%에서 200억원의참여물량이 있었다. 그러나 유효수요에서 제외해 배정하지 않았다. 사전 수요조사에서 투자확약을 받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호가대로 사전매출이 발생했다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채권은 증권신고서조차 나오기 전에 호가가 돌아다니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7월12일 3년물과 5년물 각각 500억원씩 총 1000억원을 발행할 예정이다. 현재 대표주관사를 선정하고 7월3일 수요예측에 나선다.
단독 대표주관과 인수를 맡은 현대증권은 북-빌딩과 상관없이 3년물 4.65%, 5년물 5.25%에 사전 수요를 모으고 있다. 사실상 수요예측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현대로지스틱스 채권도 수요예측은 고사하고 밴드금리를 적시한 증권신고서조차 나오기 전에 호가가 떠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7월17일 3년물 500억원을 발행할 예정이다. 인수단으로 참여한 증권사 일부는 인수 예정액에 대해 사전 수요를 모으고 있다. 매출예정금리는 4.80%다.
최근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배정이 발생한 동부제철 134회차 채권도 사전매출 움직임이 있었다. 수요예측 전 이미 최종 결정금리인 8.90%로 투자자 모집에 들어갔다. 실제로 동부제철 채권은 500억원 중 400억원 이상 물량이 사전 투자 확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 발행사들은 공통점이 있다. 계열 리스크가 크거나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시장 평판이 좋지 않은 비우량채다.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A-로 등급이 올랐지만 디스카운트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신용등급 상향의 적정성을 의심받는 등 A급 대우를 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그룹 전체의 평판이 좋지 않다. 신용등급(A-) 내 건설·조선업종 기업을 제외하고는 민평 수익률이 가장 높은 수준.
현대로지스틱스는 실질적 투기등급으로 인식되는 BBB급 기업이다. 현대그룹의 신용 리스크 또한 큰 상태다. 동부제철 또한 그룹 신용위험은 물론 자체 재무구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 수수료 녹이기, 사전매출 여전..수요예측 효용성 논란
이같은 사전매출 행위는 대부분 미매각을 염두한 조치로 파악된다. 비우량채의 경우 고금리를 제시하지 않는 한 수요예측에서 참여 물량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응찰 부족은 그 자체로 수급이 불안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인수단으로서는 사전에 미매각 부담을 털고 가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발행사들은 수요예측에서 투자자를 찾지 못할 경우 대부분 밴드 상단에서 금리를 결정하고 있다. 사전매출도 대부분 동일한 호가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사전매출을 확약한 투자자에게 동일금리로 참여하도록 유도할 가능성 또한 있다. 이 경우 미배정 규모를 줄여 대표주관사나 인수단의 평판을 높일 여지도 있다. 어차피 미매각 물량은 인수단의 몫이어서 손해볼 장사가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등급과 상관없이 미매각 물량이 확산되면서 수수료 녹이기, 사전매출과 같은 왜곡된 관행이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며 "이같은 사례가 늘어나면 수요예측을 통한 공정한 가격결정이라는 제도의 취지는 전혀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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