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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GS건설에 돌을 던지랴

강종구 기자공개 2013-04-17 08:48:40

이 기사는 2013년 04월 17일 08시4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9년 하반기 이후 오일머니가 넘치는 중동으로 향하는 대형 건설사들의 행렬은 그 옛날 유대인들의 출(出)애굽을 연상시켰다. 그들은 한때 화수분인 줄만 알았던 부동산PF의 폭탄을 피해 피난을 떠났다.

비옥했던 애굽의 땅은 금융위기가 터진 후 건설사들의 사지(死地)로 변했다. 지방의 토착세력에서 전국구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주택전문 건설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LIG그룹 한솔그룹 한일시멘트 등은 도마뱀이 제몸을 지키려 꼬리를 자르듯 계열 건설사를 잘라냈다. 웅진은 차마 자르지 못한 꼬리 때문에 그룹이 깨졌다. 오죽했으면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말고는 어느 곳도 안심할 수 없다고 했을까. 정상급 건설사인 대림산업 GS건설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싶은 그 때 중동이 다시 떴다. 금융위기 이후 급락한 유가가 안정을 찾자 쿠웨이트 UAE 등이 수조 원짜리 초대형 플랜트 공사를 앞다투어 발주하기 시작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따로 없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축하하는 팡파르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다며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대형 건설사들의 목표 주가를 상향조정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해외공사에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창출될 거라며 9개월전 떨어뜨렸던 신용등급을 원위치시켰다. 신용평가사들의 축전(祝電)에는 해외공사의 리스크에 대한 어떤 메시지도 담겨있지 않았다. 증권사 IB부서는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을 비싼 값에 팔아줬다.

그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GS건설이 UAE의 정유 플랜트 공사인 르와이스 사업장에서 그동안 벌어들인 이익의 대부분이 허구였다고 고백하고 나서야 환상은 깨졌다. GS건설이 첫 매를 맞자기다렸다는 듯 삼성엔지니어링이 바통을 받았다. 이번엔 UAE가 아니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 다음은 어디가 될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가격에 GS건설이나 삼성엔지니어링과 수주 경쟁을 벌였던 건설사들은 더 있다. 대림산업 SK건설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등... 맷집이 다르고 대처가 달랐지만 그들이 처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려와 의심을 받지 않았던 지난 3~4년간 그들이 따낸 중동과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대형 사업장은 속으로 곪았다.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다. 제법 경험이 많은 중동이었지만 한국의 건설사들에게 그곳은 여전히 낯 설고 물 설은 타향이었다. 80% 이상의 공사를 고정가격으로 계약했지만 첫삽을 뜬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보다 비용이 많이 나가고 있다는 걸 건설사들은 알았다. 수 차례 설계 변경이 이루어지고 자재값이 올랐다. 일부 공사는 지연이 되기도 했다. 모든 추가 비용은 계약상 시공사가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이를 즉시 장부에 반영하지 않았다. 협상을 잘 하면 공사대금을 올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게 한 분기 한분기가 지나고 1년 2년이 지났다.

몇 가지 단서로 신용평가사들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조선사의 선수금을 차입금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한국기업평가 J씨의 눈에는 건설사의 해외공사가 더 위험해 보였다. 도크가 한국에 있는 조선사는 여차하면 선박이라도 건지지만 건설현장이 현지에 있는 건설사는 빈 손으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NICE신용평가의 K씨는 신규 수주계약의 원가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음을 인지했다. 수주액 대비 선수금은 갈수록 줄고 있었다. 부동산PF를 피해 해외 플랜트로 떠난 대형 건설사들을 주의깊게 모니터링해야 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수상한 낌새는 챘지만 '인식'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신용평가사들이 써준 대형 건설사들의 신용등급 보고서에는 여전히 풍부한 수주잔량, 풍부한 경험으로 인한 원가관리능력, 공종의 다양화로 일군 충격흡수 여지 등의 단어들만 가득했다. 어쩌다 일부 우려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추임새이거나 양념에 그쳤다. 믿기 전에 신용평가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의심의 덕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투자자는 눈 뜬 장님이었다. 해외공사 계약은 대부분 대외비였다. 대규모 수주소식은 각 언론사에서 대서특필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금융감독원의 공시 사이트에도, 회사의 사업보고서에도, 증권사나 신용평가사의 보고서에도 해외공사에 대한 '팩트'는 없었다. 3조 원, 5조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달려있지만 공사마다 원가율이 얼마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부담을 지게 되는지 외부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절반이 사막인 척박한 곳이다. 성경이 전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이 지켜주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애초부터 이역 만리 타국 땅에서 한국의 건설사를 지켜주는 절대자가 있을 리 만무였다.
이제 그들의 고해성사를 들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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