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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삼성' 간판이 더 좋은가

배장호 차장(M&A팀장)공개 2014-12-05 08:16:35

이 기사는 2014년 12월 04일 08: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4년 12월. 중국의 '렌샹'이란 그룹이 IBM의 PC사업 인수를 전격 발표한다. 거래 금액은 당시 미화로 12억5000만 달러. 합의안에 따르면 렌샹 그룹은 IBM에 최소 6억5000만 달러의 현금과 6억 달러 상당의 렌샹 주식을 지급키로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금, 렌샹 그룹은 세계 PC시장의 20%를 점하는 글로벌 넘버원 메이커로 성장했다. 탄탄한 PC사업을 발판 삼아 최근 몇 년 사이 태블릿PC와 스마트폰 시장에서까지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지금의 레노버(Lenovo)가 바로 그 렌샹이다.

레노버가 IBM PC사업을 인수하던 당시로 잠시 돌아가 보자. 중국은 아직 정보기술(IT) 산업의 변방이었다. 굳이 인터넷 보급률과 같은 객관적 숫자를 들이댈 필요조차 없다. 10년 전만해도 중국산은 싸구려 짝퉁의 본산이었다. 30년 전 한국이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반면 IBM은 지금의 PC를 존재하게 만든 원조 기업이다. PC가 세상에 선보인 초창기 PC는 곧 IBM이었다. 그런 IBM PC사업이 짝퉁이나 만드는 변방 기업에 팔린다고 하니 세상이 떠들썩 할만도 했다.

하루 아침에 IBM에서 레노버로 회사 배지를 바꿔 달아야 하는 직원들의 심정이야 오죽 착잡했을까. 자그마치 8700여명. 하지만 이들은 회사가 간판을 바꿔 달았다는 이유로 일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러 저런 이유로 자연 이직은 일어났겠지만, 적어도 집단으로 반발하거나 이탈하는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기업간의 정상적인 M&A는 직접적으로는 주주들의 문제여서 직원들이 찬성과 반대를 거론할 일이 아니다. 범위를 넓혀 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인수회사의 간판을 문제삼아 반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레노버의 예로 다시 돌아가보자. 당시 IBM에서 PC사업은 전략적으로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삼성전자, 소니 등 아시아의 PC회사들이 이미 전 세계 PC시장을 휩쓸고 있고, 가까운 미래를 봐도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경쟁 대열에 나설 경우 IBM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IBM은 대신 IT 컨설팅, 시스템 서버 등 B2B 시장에 집중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반면 레노버에게는 PC사업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IBM 인수를 통해 일약 세계 PC시장 3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무엇보다 그 M&A로 중국이라는 무궁무진한 잠재시장을 얻게 됐다는 점은 IBM PC사업부와 소속 직원들에게 큰 기회이기도 했다. 그 덕에 지금은 명실공히 세계 1위 PC메이커로 성장했다.

피인수 후 성장 과정을 통해 직원들은 틀림없이 많은 기회와 보상을 누렸을 것이다. 더 이상 성장이 없어 구조 조정에 직면한 직장을 다녀 본 사람은 그런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회사가 아무리 화려한 간판을 가지고 있어도 나에게 좀 더 길게(가령, 막내아이 대학 졸업 때까지) 기회를 주는 회사만 못한 법이다.

삼성그룹이 방산 계열사와 유화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말을 앞둔 시장은 이래저래 말들이 많다. '선택과 집중'을 택한 두 그룹의 용단에 아낌없는 찬사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일각에서 '삼성맨이 하루 아침에 한화맨 신세됐다'다는 식의 탄식도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냉정히 생각해보자. 삼성 그룹에서 방산과 유화는 더 이상 핵심사업이 아니다. 끊임없이 성장 전략을 모색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리하는 쪽으로 이미 결론을 내렸다. 반면 한화 그룹에게 방산과 화학 사업은 미래 한화의 중추를 담당할 핵심사업이다. 삼성의 방산과 유화를 인수하면 두 부문 모두에서 국내 1위 자리에 오르게 된다.

아무리 삼성이라지만, 성장을 포기한 사업 조직의 일원으로 남아 구조조정의 위협(그래도 삼성이니 대규모 명퇴 같은 방식은 없겠지만) 속에서 무력하게 연명하며, 그래도 삼성맨이란 부질없는 자부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최선인가. 아니면 업계 1위 기업의 일원으로서 성장 전략에 일조하며 도전의 기회를 더 많이 가지는 선택이 나은가.

알려졌다시피 삼성의 합작 파트너였던 토탈도, 탈레스도 모두 이번 M&A에 동의했다. 삼성이란 브랜드보다는 1등으로서 더 큰 성장 기회를 택했다. 레노버에 팔린 IBM 직원들도 같은 선택을 했다.

그래도 삼성이란 이름이 더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삼성후자'가 아닌 '삼성전자'로 입사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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