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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잃어버린 10년' [thebell note]

김익환 기자공개 2014-12-17 09:15:00

이 기사는 2014년 12월 15일 08: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84년 7월 어느날. 김항덕 당시 유공 사장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집무실 문을 노크도 없이 불쑥 열었다. 황당해하는 최 선대회장에게 김 사장은 북예멘 광구에서 원유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원유 발견 소식에 최 선대회장은 안절부절 못했다고 한다. 4년 후 1988년 1월 20일, 유공해운 소속 Y위너스호가 북예멘 광구로부터 35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울산항에 입항했다. SK가 그리던 '산유국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반백년 넘게 정유시황에 울고 웃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시황의 한계를 극복할 필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석유개발 사업에 매진했다. 수익성 높은 석유개발사업을 안전판 삼아 시황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은 먹혔고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년간 SK이노베이션은 석유개발 사업을 잇는 안전판 사업을 물색했다. 2005년 인천콤플렉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1967년 출범한 인천콤플렉스는 하루 27만 배럴의 원유처리 능력을 갖춘 정유설비로 SK이노베이션은 인수를 위해 3조 원이나 베팅했다.

하지만 인천콤플렉스는 설비가 노후화한 탓에 가동률이 50%를 맴돌았고 SK이노베이션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지난 2012년 재무적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해 파라자일렌(PX) 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상업생산에 착수했지만 손실만 내고 있다.

2006년부터 생산라인을 가동한 배터리사업의 처지도 매한가지다. LG화학과 삼성SDI, 일본 AESC 등에 밀려 고전하는 중이고 최근에는 세계적 부품회사 콘티넨탈과의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약도 깨졌다. 비슷한 시기에 설비를 가동한 정보전자소재사업도 일본업체 등과의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증권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정보전자소재사업에서 올해 2000억 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최대 국영석유업체 시노펙과 손잡은 '우한 에틸렌 합작사업'도 올 들어 누적 순손실을 내고 있다. 최근 진행한 파라자일렌·윤활기유 합작투자도 시황악화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최근 10년간 추진한 굵직한 신사업 상당수가 제몫을 해주지 못한 셈이다. 올 들어 정유시황 악화로 홍역을 앓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잃어버린 10년'에 진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지난 9일 SK이노베이션은 정철길 SK C&C 사장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내정했다. 정 사장은 지난 1993년 과장 시절, 미얀마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미얀마 사업은 실패로 귀결됐지만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업 관계자를 단 한명도 문책하지 않았다. 미얀마 실패의 경험은 SK그룹의 귀중한 자산이 됐다. 정 사장이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을 바탕으로 어떤 결과물을 낼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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