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4월 28일 14: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시골마을에 있는 아담한 전원주택형 한옥에 산다. 두어번 소주잔을 기울였는데, 그 중 한번은 그의 집에서였다. 같은 고양시에 살고 있어 집에 가는 길에 소위 '2차'를 했다. 기자와 홍보맨이 집에까지 가서 술 한잔 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비난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취재와 관련한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선비 스타일의 인품 좋은 인생 선배같은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즉흥적인 초대에 응했다.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고 성완종 회장의 최측근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 성 회장의 비서출신인 그가 홍보담당 임원을 맡았을때 처음 만났다. 온화한 얼굴과 온화한 미소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비서출신답게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게 몸에 밴 스타일이지만 소탈한 성격과 말투가 이를 커버해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위 '공장 얘기'를 한 적도 별로 많지 않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그의 자녀들 얘기를 들으며 비슷한 또래의 우리 애들을 떠올렸고, 집에서 답십리 회사까지의 장거리 출퇴근 얘기를 들으며 월급쟁이의 삶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성 회장과 관련한 얘기도 거의 하지 않았다. 잠잘때도 핸드폰을 머리 맡에 놓아야 하고, 애들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도 '회장님 호출'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던 과거 비서 생활의 고충 정도를 털어 놓은 것이 전부였다. 다만 그가 여전히 성 회장의 측근이며, 홍보업무 말고도 더 많은 중책을 맡고 있다는 정도는 눈치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박 전 상무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있는 상태다. 성 전 회장을 오랫동안 보필해 온 만큼 전·현직 실세들의 금품수수 혐의 등을 수사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가 홍보담당 상무 외에 경남기업 계열사인 대아건설과 온양관광호텔의 대표로 재직했었다는 사실도 이번 사건을 통해 처음 알았다.
성 전 회장이 자살을 결심하기 직전까지 박 전 상무와 대책을 논의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너와 가까운 '가신'임을 알게 됐다. 내가 그동안 보아 왔던 그의 인품으로 볼 때 결코 증거인멸 등의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게이트' 성격의 사건인 만큼 반드시 진실이 가려져야 하고, 죄를 저질렀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박 전 상무도 모든 의혹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 놓아야 한다.
다만 흔히 '가신' '오른팔' '2인자' 등으로 불리는 오너의 핵심 참모들의 숙명이랄까. 그림자처럼 늘 오너 곁에 머무르며 온몸을 바쳐 보좌하는 그들의 애환이 오버랩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정치든 기업경영이든 보스의 옆에는 늘 참모들이란 그림자가 있다. 지금도 상당수 대기업에서 '실세'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이처럼 오너가 총애하는 측근 그룹이다. 비서출신들은 대개 회사내에서 끗발이 센 축에 속한다. 오너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언제든 오너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이유로 오너를 대신해 법적 책임을 지거나 외부의 비난에 방패막이가 되는 케이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박 전 상무 역시 한때 사세를 키우며 잘 나갔던 자수성가한 오너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모셔왔던 인물이다. 정계에까지 진출했던 욕심 많고 부지런한 회장을 모셨으니 주말도, 휴일도, 사생활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회장을 위한 삶을 살았을 그의 고단함이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그를 비롯한 측근그룹이 벌여 왔던 모든 일도 회장의 '의중'에 따라 착착 차질 없이 진행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행여나 부정한 일을 해야 할때도 그들은 아마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의 범법 여부는 검찰의 추가 수사와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고 만일 죄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진실을 왜곡하려는 외부의 시도와 압력이 그를 짓누른다면 그는 범죄자이자, 권력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모든 책임을 지고 나서도 이를 인정해주거나 고마워 할 '주군(主君)'조차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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