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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 박삼구의 '봉산개도(逢山開道)'

이진우 부장(산업팀장, 건설부동산팀장)공개 2015-05-29 08:21:44

이 기사는 2015년 05월 28일 07: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한 대목. 적벽대전에서 유비에게 패한 조조가 도망을 가던 중 부하들이 "길이 좁은 데다 새벽 비에 패인 진흙 구덩이에 말굽이 빠져 갈 수 없다"고 하자 조조는 "군대는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행군하는 법"이라고 호통을 쳤다. 조조는 "진흙 구덩이쯤 만났다고 행군을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흙을 나르고 섶을 깔아 구덩이를 메우고 행군하라"고 명령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강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다.

이 말은 현대에서도 수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이 난관극복을 다짐할때마다 단골로 인용한다. 요즘 옛 금호그룹의 고토회복에 절치부심하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올 초 신년사에서 이 말을 거론했다. 그는 "대내외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호산업의 사실상 워크아웃 졸업,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졸업, 아시아나항공 자율협약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3만여 금호아시아나 직원분들이 절박한 마음과 '見危授命(위기에 목숨을 건다)'의 자세 그리고 '逢山開道 遇水架橋(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강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서 어려움을 극복한다)'의 지혜로 그룹의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올해 경영방침으로 내세웠다. 천체의 운행이 늘 건실하듯 쉼 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가꿔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지난해 신년사에서 천명했던 '제2의 창업'을 완성해 가는 단계에서 스스로를 강하게 만드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계열사들의 잇따른 위기극복과 함께 그에게 남은 올해 최대 과제는 금호산업 재인수를 통한 명실상부한 '그룹 재건'이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무너졌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잰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 첫 단추는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되찾아오게 된 금호고속이다. 협상 마감시한까지도 '결렬'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결국 품에 안았다. 모태기업인 금호고속에 이어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까지 되찾아 오면 명실상부한 옛 금호 영토를 회복하게 된다. 당연히 남은 관심은 금호산업을 과연 인수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박삼구 회장은 재계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한 재계 인사는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번 대면을 하면 마치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고 인물평을 했다. 공식행사에서 몇번 마주쳤을때 묘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표정과 말투에 늘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친절하다. 조급해 보인다거나 신경질 적인 인상을 준 적이 별로 없다.

굳이 생뚱맞게 인물평을 한 것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것 같은 금호산업 인수전을 맞이해서도 그의 표정과 말투는 별반 달라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의 한 임원은 "실무적으로야 다양한 방안과 묘안을 구상하고 있겠지만 적어도 공식 회의때 보면 오히려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한다"며 "우리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라고 전했다.

금호산업 인수전의 핵심 키는 당연히 자금력, 즉 '돈'이다.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어느정도 적정한 가격을 이끌어 내고, 또 그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포인트다. 세간에서는 금호그룹의 자금력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금호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는 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말 장난 같지만 '인수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결국 인수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곳'이 바로 박삼구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호반건설이 한때 강력한 복병으로 떠올랐을 때도 이같은 아이러니한 분석과 전망이 지배했다. 심지어 '적군'들조차도 세간의 이런 분석에 미묘한 부담감을 느낀다. 선대부터 이어져 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역사와 지역적 기반, 정·관·재계에 걸친 박삼구 회장 특유의 마당발 인맥, 그리고 '고토회복'이라는 명분을 뛰어 넘은 인수 동인(動因)을 가진 후보자의 부재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생각된다.

박 회장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번 금호산업 인수 협상을 놓고도 "채권단이 합리적으로 (가격을) 제시할 것"이라며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조급해 하지 않고 있다. 그가 다시한번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강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해 '결국 다른 대안은 없었다'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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