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유암코, '터줏대감'에서 구조조정전문회사로 [한국의 NPL시장]⑤설립후 약 19조 부실채권 인수…기업구조조정, '우려반 기대반'
강예지 기자공개 2015-12-04 17:08:01
이 기사는 2015년 11월 24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은 14조 원을 넘어섰다. 부실채권 규모가 1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나면서 부실채권 비율도 1%대로 높아졌다. 당시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자산유동화를 통한 부실채권 처리의 진성매각이 인정되지 않자 은행들은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를 받아줄 만한 수요가 없었다. 2009년 10월 연합자산관리(UAMCO·유암코)가 설립된 배경이다.설립 7년차로 명실공히 국내 부실채권 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지만 유암코를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일각에서는 시장 경쟁을 통한 가격 결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지만, 100%에 가까운 참여율과 낮은 금리를 통한 막강한 조달능력 등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는 유암코가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암코는 최근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시장은 유암코의 제한적인 기능 그리고 시장의 첨예한 이해관계 등으로 기업구조조정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참여로 유암코가 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민간 배드뱅크의 등장…은행권 부실채권 매각 6조 원 넘어서
금융위기 이후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제도 정비의 속도를 높였다. 2009년에는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기업구조조정 추진상황 및 금융회사 부실채권 정리계획'이 확정됐다. 구조조정기금 등을 통한 부실자산 처리가 적극 추진됐고,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건전성 분류 지도를 강화했다.
은행권에서도 자체적인 부실채권 처리를 확대하기 위해 신한·KB국민·하나·IBK기업·우리·NH농협은행 등 6개 은행이 1조 5000억 원의 자본을 투입해 민간 배드뱅크인 유암코를 설립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부실채권 투자 수요를 조성할 시장이 필요했고, 은행들로서는 대량의 부실채권을 빠르게 매각할 수 있었다. 경쟁입찰을 통해 공정가치로 부실채권 매각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컸다.
유암코 설립 이후 부실채권 입찰경쟁 시장이 커졌다. 2008년 매각을 통한 은행권의 부실채권 정리규모는 2조 원에 못 미쳤지만 2010년에는 6조 4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은행들이 출자한 우량 투자자가 등장하자 이 시장에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들도 많아졌다.
설립 후 5년여 간 유암코가 인수한 일반담보부채권과 특별채권, PF(프로젝트파이낸싱)채권 등은 누적 원금 기준 약 19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다. 유암코는 지금까지 매분기 열리는 은행권 부실채권 경매에 100% 가까운 참여율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40%에 가깝다.
◇ 반민반관(半民半官) 유암코, 시장 기대와 달라
부실채권 시장의 매각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내 부실채권 투자와 평가, 자산관리의 수준을 끌어올린 유암코의 역할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시장에 나오는 물량의 절반 가량을 소화하는 유암코에 대해 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암코 설립 후 투자자의 시장 진입으로 부실채권 시장이 활성화됐다"면서도 "유암코의 가격수준을 넘어서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도 가격을 올려쓰기 시작했고, 높은 가격을 견디지 못한 일부 투자자는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가격으로 득을 본 것은 매각자인 은행"이라며 "현재의 유암코는 시장 활성화에 오히려 반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암코가 부실채권 투자에서 기업구조조정으로 시장 저변을 넓혀줄 것이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점도 있다. 이같은 기대는 유암코가 공공과 민간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부실채권 시장의 본질은 기업구조조정으로 연결되고, 국내 주요 은행의 출자, 이성규 대표를 비롯한 기업구조조정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유암코에 이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기업재무안정사모투자전문회사 등을 만들었지만 성공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구조조정의 취지를 살린 사례로 세하주식회사가 유일하게 꼽히지만 아직 두드러진 성과가 없다"며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첨예한 이해관계…'新유암코'의 향방은
일각에서는 기능이 제한적인 태생적 한계를 유암코가 그동안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없었던 배경으로 꼽고 있다. 예로 유암코는 자금 대출업무를 할 수 없어 재무안정사모투자전문회사와 같은 비히클을 통해 투자·운용할 수 있다. 최근 매각이 불발된 동시에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로서의 기능이 부각됐지만 시장에서 새로운 유암코에 대한 우려가 높은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은 기업구조조정이 쉽게 진행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대상 회사의 채권들을 사와야 하지만 채권자의 매각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복잡한 채무관계와 리스크 등이 얽혀 채권을 묶어 파는 것이 일반적이며 개별 채권의 매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본질적으로 채권이 있어야 구조조정이 가능하지만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 유암코로서는 전과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라며 "투자자는 사고 싶은 채권을 사기 어려울 뿐더러 매각자가 희망하는 가격은 투자자와는 심각한 괴리를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분 참여 등으로 유암코가 그동안과는 다른 행보를 걸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 6개 시중은행의 참여에도 기업구조조정 활동이 원활하지 않았다"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기관의 참여로 제대로 기업구조조정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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