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기로에 선 특수은행]되풀이되는 자본부족…아쉬운 리스크관리[수출입은행①]건전성에 빨간불…여신 부서 개편, 한계도 존재

한희연 기자공개 2015-12-29 10:54:41

이 기사는 2015년 12월 28일 14: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에 큰 불(장기 경기침체)이 나서 특급소방수(수출입은행)가 물(정책자금)을 써 불길을 잡았다. 그런데 물값(자구계획안)을 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수출입은행 내부 게시판에 한 직원이 올린 글이다. 기획재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에 대한 출자에 앞서 자구계획안을 요구하자 수출입은행 직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내부 기류를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추가 출자가 얼마나 당면 과제인지를 알려준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자본을) 1조 원 늘려야 (자산을) 10조 원 늘릴 수 있다"며 "수은이 올해 조선업 등에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1조 원 이상의 출자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수은은 올 들어 경남기업·SPP조선·성동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 등 굵직한 기업 부실화 사건 때문에 건전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진행중인 기업 구조조정과 조선업황을 고려하면 당분간 수은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어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한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게 출자 논의의 골자다. 그러나 때마다 정부의 추가 출자가 이뤄져야 하는 점과 비자발적 기업 구조조정에 임직원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점 등은 수은이 풀어야 할 장기 과제로 지적된다.

수은은 수출입·해외투자·해외자원개발 등 대외 경제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초기 납입자본금 외에도 국책사업에 관여하다 보니 정부로부터 잦은 출자를 받고 위기를 버텨왔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약 8000억 원 씩을,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6500억 원, 1조 500억 원을,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1조 1000억 원, 8700억 원 가량의 출자를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출자금액만 도합 5조27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출자 금액(산업은행 5000억 원, 정부 1조 원)을 더하면 약 19년간 6조 7700억 원의 혈세가 수은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수은의 고질적 문제는 늘 부족한 자본이다. 최근엔 국책은행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자본훼손을 경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9.44%다. 지난해 말엔 10.50%, 2분기 말엔 10.13%을 기록해 두자리 수를 유지했으나 석 달만에 한 자리수로 떨어졌다. 국내 은행 평균인 13.96%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BIS비율이 한자리수로 떨어지면 은행경영실태평가에서 2등급을 받게 돼 조달금리 상승이 불가피하다.

clip20151218160435

자본 부족의 원인은 주로 기업 여신의 부실화에 기인한다. 총 여신액 대비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2.17%로 은행권 평균(1.41%)과 괴리가 크다. 수은의 총 여신은 지난해 106조 2000억 원에서 올해 9월 말 124조 5000억 원으로 18조 원 넘게 늘었다. 고정이하여신은 9월 말 기준 2조 7000억 원이다. 전년말 대비 5500억 원 늘어난 고정이하여신 중 3500억 원이 조선업체 여신으로 파악된다.

clip20151218090715

기업의 수출입을 돕고 해외투자 활성화에 기여해야 하는 수은의 본질적인 역할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수은의 역할에 부합되는 여신이 대부분이었고 수년전만해도 부실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 다른 시중은행은 건전성을 꽤 잘 유지해 왔다는 점에 비춰보면 반드시 문제가 '업황'에만 있지 않다는 게 수은을 바라보는 외부 시각이다.

특정 산업에 대한 여신 편중과 모호한 대출심사기준 등 외부환경 변화에 취약한 리스크관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 주로 지적된다. 수은 이사회에서 이뤄진 참석자간 대화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내년 업무계획을 논의하는 과정 중 한 참석자는 "인력규모 대비 과다한 업무목표로 리스크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며, 과다한 업무목표는 한계기업 퇴출을 가로막아 산업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어 지속적으로 줄여야 한다"며 "유관기관과 협조해 내수기업의 수출기업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대기업 익스포저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여신포트폴리오를 운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른 참석자는 "최근 건전성 악화와 관련한 외부의 시각을 반영해 업무계획 총칙 기본계획 부분에 리스크관리를 위한 노력도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책금융기관의 리스크관리는 상업금융기관보다 엄격하게 이뤄져야 하나, 경제와 산업의 체질 강화 등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 또한 이해해야 한다"며 "현재도 산업관리자로서 산업체질 개선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좀 더 명확히 리스크관리 강화라는 표현을 넣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다.

이 행장은 지난 8월 리스크관리단을 리스크관리본부로 승격시켜 잠재위험성관리 강화를 꾀했다. 리스크관리본부 산하에 심사평가부도 만들어 여신부서의 대출을 별도로 심의하는 장치도 만들었다. 여신본부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를 통해 추가 건전성 악화를 막아보자는 취지다. 이 모든 게 리스크관리의 부족함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신평가 시스템이나 직원 역량 등 면에서 시중은행과 수은이 현격한 차이가 있느냐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며 "건설이나 조선 등 위험업종에서 발빼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모두 떠안다 보니 불가피하게 건전성이 나빠진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수은이 갖고 있는 정치적 한계가 분명 있으나 호황기 때 불황을 대비하지 않아 늘 자본 부족 현상을 겪었다는 점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은 건전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본질적인 대책은 부실기업 지원 등에 대한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를 완화하고, 외부 압력이나 비난과는 상관없이 원칙에 입각해 여신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면서도 "상당히 이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