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특수은행]만연한 인사 적체…'역피라미드' 고착화[산업은행③]직원 충성도 하락 우려…'젊은 피' 수혈도 어려워
안경주 기자공개 2015-12-18 09:52:39
이 기사는 2015년 12월 16일 10: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심각한 인사 적체는 산업은행이 내부적으로 풀어내야 할 또 다른 큰 숙제다. 인사 적체 현상의 원인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바뀌는 정책금융 제도에 1차 원인이 있다. 은행이 성장할수록 자회사로 임직원을 내보내거나 부서를 확대해 승진 적체 현상을 줄이는 등의 탄력적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 매번 뒤바뀌는 정부의 '대(對) 산업은행 정책'은 이런 인력 운영의 묘를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그렇다고 정부 책임만 있는 건 아니다. 위험을 기피하는 산업은행 내부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는 새로운 사업부서를 태동시키고 더불어 새로운 인사 수요를 만들지 못하게 한 또 다른 이유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말 현재 산업은행의 총임직원 수는 3200명이다. 책임자급 수는 1775명(55.5%)으로, 사원·대리 등 행원급 수(1234명, 38.6%)보다 많다. 2000년 말의 책임자급(1340명, 67.8%) 및 행원급(579명, 29.3%) 비율과 비교해보면 '역피라미드' 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팀장(3급) 이상 간부급 인원수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그렇다보니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직급과 업무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생긴다. "중간 간부급인 3급에 승진하고도 아직 팀원"이라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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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적체로 늙어가는 조직
산업은행의 인력 구성을 좀 더 세분화하면 팀장 이상 간부급 직원(1·2·3급) 수가 전체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행원(5·6급) 수와 비슷하다. 공공기관 정보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올해 9월말 기준 간부급 직원 수는 1009명(34.1%), 행원 수는 1081명(36.5%)으로 나타났다. 정책금융공사와 통합 직전인 지난해 말과 비교해 간부급 직원 수는 85명, 행원 수는 64명 증가했다. 행원 수보다 간부 직원 수의 증가세가 더 빠른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산업은행의 독특한 인력수급 탓이다. 1954년 설립 이후 50~70명 안팎으로 신규채용을 해왔던 산업은행은 1990~1993년까지 4년에 걸쳐 채용 규모를 크게 늘렸다. 경제 호황을 등에 업고 산은의 역할론이 대두되자 전략적으로 채용 규모를 확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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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은 1990년과 1991년에 200명 안팎을 뽑았고 1992년과 1993년에도 150명의 채용 수준을 유지했다. 이들은 현재 산업은행 2급 대부분과 3급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인사 적체의 핵심도 한꺼번에 몰려 있는 이들 세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인력 구조가 피라미드형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역피라미드형 또는 항아리형 구조로 심화되고 있다"며 "1993년 입행 이후 세대는 승진 등이 상당히 늦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 운영도 기형적으로 되고 있다. 예컨대 하나의 팀에 같은 직급인 직원이 2명 배치된다. 팀장과 파트장으로 나눴지만 2명의 팀장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로 껄끄럽다 보니 내부에서 업무를 분장하고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팀장의 자리 수는 정해져 있지만 인사 적체로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지 못하니 만들어진 촌극이다. 산업은행의 잉여인력이 완전 해소되는 시기는 1990~1993년 입행했던 이들이 대규모 자연퇴직하는 2017년부터 2020년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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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공사와 재결합하면서 만들어진 인사 문제도 내부적인 갈등 요인이다. 정책금융공사로 옮긴 직원들은 정책금융공사 시절 승진이 빨랐다. 반면 산업은행에 남아있던 직원은 인사 적체로 승진이 늦어졌다. 재결합을 해 보니 동기들끼리 서로 직급이 다른 경우가 생겼다. 기존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직급 불균형 문제'가 불거졌고 인사 적체 문제와 별도의 또 다른 인사상 불균형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젊은 피' 수혈로 성장동력 찾아야
인사 적체는 비대해진 조직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조직을 줄이면 그만큼 팀장 이상 자리 수도 줄어든다. 그런데 요즘 정부는 소매금융 및 투자은행(IB) 업무를 줄이고 정책금융 업무를 강화하라고 한다. 기존 조직을 확대시켜도 모자랄 판에 기존 조직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라고 하니 인력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산업은행이 소매금융을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작고 투자은행 업무만 하기에는 쓸데없이 지점이 많은 이상한 금융기관으로 전락했다"며 "민간은행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과다하게 팽창한 지점이나 조직은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고 순수 정책금융 기능에 역량을 모아야 하지만 그만큼 간부급 자리 수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직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기업은행·산업은행 역할 강화 방안'에 따라 조직·인력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산업은행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TF에서 어떤 방안을 내놓는지에 따라 인사 적체가 해소될 지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환기에서 방향성을 잃은 산업은행이 인사 적체 해소 문제와 관련해서는 회복할 수 없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젋은 피' 수혈을 늘려 더 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은 올해 59명만 신규 채용했다. 이는 지난해 70명보다도 적다. 민영화를 추진하던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세 자리수 인력을 뽑았지만 고졸인력과 지점 창구 텔러가 대부분이었다. 일례로 2013년 414명의 신규 채용 인원 중 여성만 354명이었다. 대부분 창구 텔러였다.
인사 적체가 지속되면서 직원들의 충성도는 갈수록 떨어진다. 어떻게 보면 산업은행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내부 결속력을 떨어뜨리는 이런 인사 문제일 수 있다. 단적으로 입행 한 지 5년도 채 안된 직원들이 외국계 금융회사 등으로 떠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풍토가 형성됐을 정도다.
앞선 관계자는 "팀장급의 인사가 적체돼 있기 때문에 일반 직원들은 부장급 승진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팀장급도 굳이 승진을 바라지 않게 되면서 일반 직원들의 희망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으로부터 승진이라는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기회가 됐을 때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려는 모습이 더욱 많아졌고 점차 당연해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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