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특수은행]툭하면 시장마찰·업무중복…설 자리가 없다[산업은행②]IB·소매금융 부문서 시중은행과 잦은 경쟁…갈등 최소화 필요
안경주 기자공개 2015-12-17 09:12:00
이 기사는 2015년 12월 15일 11: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5년 말부터 국회 및 언론 등에서 국책은행의 시장마찰 문제를 지적해 왔다. 불필요한 시장마찰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산업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기로 했다.(2007년 7월6일, 재정경제부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 中)#일반은행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시장점유율 경쟁 등 유사한 형태를 보이거나 시장마찰이 있었던 만큼 역할 강화와 재조정이 필요하다.(2015년 11월1일, 금융위원회 '기업은행·산업은행 역할 강화 방안' 中)
산업화 시대 이후 커지기만 했던 산업은행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화두는 '시장마찰'이다. 2000년대 들어서 정부는 매번 산업은행 역할 재조정을 통해 시장마찰을 줄이고자 했고 업무중복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민영화'라는 큰 이슈를 제기하며 시장마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다. 정부는 여전히 산업은행의 역할을 재조정해 시장마찰을 줄인다고 발표만 하고 있다. 이는 금융발전이 이뤄지면서 시중은행의 성장으로 새로운 업무영역에서 마찰이 생긴 탓도 있지만 산업은행 역시 틀을 바꾸지 못한 탓도 크다.
◇백화점식 사업 운영으로 시장과 충돌
산업은행은 지난해 정책금융공사와 통합을 앞두고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자문을 했다. 민영화 추진에서 정책금융 강화로 정부의 정책이 바뀌면서 방향성을 잡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통합산업은행이 출범한 지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시중은행과 시장마찰은 커지고 있다. IB부문이 대표적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부터 발전소 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 SOC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시중은행과 경쟁했다.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 총 4조3000억 원 규모의 인천공항철도 운영 사업 입찰의 경우 국민은행 컨소시엄에 밀려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장 마찰은 금융위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금융위는 "IB업무는 그 동안 시장선도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민간의 역량이 증가하면서 시장마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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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금융 업무에서도 경쟁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지금은 소매금융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상황이어서 큰 마찰은 없지만 여전히 갈등 요인이 있다. 산업은행의 영업점포 개수는 2009년 45개에서 2013년 6월 82개로 늘었고, 민영화를 포기한 현재도 82개를 유지 중이다.
민간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산업은행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마찰영역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의 역할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회사채 주관과 M&A자문, PEF 등에 대해 탄력적으로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마찰은 그동안 산업은행이 조직 운영을 백화점식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운영한데서 비롯됐다. 2007년 7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을 때 산업은행의 회사채 주선과 벤처기업 직접투자 업무는 각각 자회사인 대우증권과 산은캐피탈로 이양하도록 했다.
당시 중장기적으로 산업은행의 IB업무를 대우증권으로 이관하기로 했으나 2008년 8월 민영화 발표 이후 이양 계획을 중단하고 사업 영역을 더욱 넓혔다.
지난해 이뤄진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합에 따른 통합산업은행 출범은 결정판이다. 온렌딩 등 간접금융 업무 등 정금공에서 다루던 업무까지 맡았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경기가 좋을 때 시장마찰이 발생하지만 경기 침체시 시중은행의 참여 저조로 오히려 시장이 악화되는 만큼 보완적 기능으로 산업은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가장 시장마찰 논란이 있었던 국내 회사채 시장을 보면 최근 경기악화 등으로 시중은행이나 다른 금융회사의 참여가 저조하고, 대부분 산업은행이 참여하고 있다"며 "경기악화시 시장 보완적 기능을 하고 있는 만큼 무작정 시장마찰을 이유로 사업을 조정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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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간 업무중복…혼란 겪는 산업은행
시중은행과의 시장마찰 뿐만 아니라 수출입은행과의 업무중복도 문제다.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본격 시작할 유암코와도 업무중복 우려가 생긴다.
우선 해외 PF 사업을 놓고 수출입은행과 업무가 중첩되고 있다. 2013년 8월 발표한 '정책금융의 역할 재정립 방안'에 따라 통합산업은행이 출범하면서 해외 PF 등 해외투자와 금융주선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영역은 그동안 수출입은행이 맡아왔던 부문으로 국책은행끼리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 결과, 산업은행의 올해 해외 PF사업 실적은 13건, 15억8700만 달러(연말 예상금액)로 2006년 첫 사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면 1999년부터 해외 PF를 추진했던 수출입은행은 올해 13건, 39억91000만 달러(11월말 누적 기준)의 실적을 올렸지만 2013년 수준(17건, 77억 달러)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올해 금융위가 '기업은행·산업은행 역할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해외PF를 확대토록 해 업무중복에 따른 갈등은 더욱 확산될 소지가 생겼다.
기업은행과 중소기업 지원부문에서도 업무중복이 우려된다. 산업은행은 오는 2018년까지 중견기업과 예비중견기업에 대해 30조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현행법상 대출자산의 7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지원해야 하는 기업은행 입장에선 경쟁이 불가피하게 된 셈이다.
일각에선 시대에 따라 역할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지 않자 백화점식 운영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최근 정부의 역할강화 방안을 토대로 준비하고 있는 조직개편을 통해 정체성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산업은행의 영역은 너무 넓어서 시장마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시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업무는 따로 떼어내 전체적인 정책금융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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