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특수은행]본연의 역할 축소..중장기 생존 위협[수출입은행②]여신 확대 한계...남북협력기금도 개점 휴업
윤동희 기자공개 2015-12-30 11:04:03
이 기사는 2015년 12월 29일 10: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출범 40주년을 맞는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은 대표적으로 정체성 위기에 봉착한 특수은행이다. 한국산업은행처럼 정권 교체마다 개혁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해가면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축소된 경우다. 본연의 설립 목표와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수은의 흔들리는 정체성은 2016년 사업계획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수은은 2016년 여신지원금액 계획을 전년대비 5조 원 줄인 75조 원으로 보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지원을 1조 원 늘렸으나 보증지원 규모를 5조 원 가량 축소한 영향이다.
수은은 이에 대해 "주요 지원산업인 건설플랜트, 선박 수주급감으로 금융수요가 감소했으며 특히 수주와 직결되는 이행성보증 수요가 급감했다"며 "시장수요 및 정책금융역할 등을 감안, 대출목표를 전년대비 1조 원 증액하고 보증목표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주력 사업 영역이 줄어든 점을 직접 인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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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지원 규모를 늘리기는 했지만 이 또한 본연의 업무를 감안했을 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당초 보증 규모가 대출 규모보다 컸지만 2009년부터 대출이 보증을 앞서게 됐다. 대출증가율은 연평균 20%를 기록했고 보증 규모는 2011년 이후 꾸준히 줄어들었다.
수은의 여신관리 시스템이 대출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선, 철강, 플랜트 등 특정 산업에 여신이 편중되고 기업 구조조정 작업도 장기화 되기 일쑤다. 특히 수신 기능이 없는 수은으로서는 여신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부실이 발생할 경우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대외자금조달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리스크도 안고 있다. 끊임없이 자본 부족 문제에 부딪히는 상황이라면 근본적 대안 마련에 나서야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수은의 총 여신은 올해 9월 말 124조 원으로 전년 말 대비 17조 원 넘게 늘었다. 하지만 고정이하 여신은 같은 기간 5500억 원 증가했고 이 중 3500억 원이 조선업체 여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국감에서는 수출입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 있는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추가 지원 금액이 올해에만 2600억 원, 중기적으로 4200억~4800억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혀 정상화 작업이 요원함을 시사했다. 수은의 여신 쏠림 현상이나 부실화는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라는 논리가 있지만 수은 홀로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으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리스크관리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수은이 장기적으로 여신규모를 늘리기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WTO 규정상 정책금융기관의 직접대출은 특정 산업의 부당지원과 관련한 무역마찰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수은은 공적신용수출기관(ECA·Export Credit Agency)이다. 대출과 보증 등 어떤 형태로든 금융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세계적인 추이를 봤을 때 대부분의 국가는 직접대출보다는 보증을 통해 지원하는 편이다. 무역보험공사가 2012년 발간한 ECA 및 유관기관 현황에 따르면 ECA를 운영하고 있는 OECD 회원국 31개국 중 절반 이상(55%)인 17개국이 직접대출 없이 수출보험 또는 보증만을 취급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통상 '60 대 40' 비중으로 JBIC(일본 수출입은행)와 상업은행의 비율로 직접대출을 실시해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미국 수출입은행(US EXIM)도 대출 비중이 30%를 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무역보험공사와 창구를 일원화 하거나 역할을 분담하는 방안을 시도해봤지만 늘 실패로 끝났다. 금융위가 2013년 무보의 중장기 수출보험을 수은으로 이관하는 계획을 제안한 게 대표 사례다. 하지만 각 기관의 소관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로 다르고 업계 반발이 거세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았다. 정부 주도로 수은의 새로운 역할을 정립해 주는 것도 어렵다는 의미다.
주력 업무는 아니지만 수은이 전담하고 있는 남북협력기금도 미래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통일원은 1991년 수은에 기금업무를 위탁했다.
지난해 말 남북협력기금 지원규모는 875억 원으로 2000년부터 8년 간의 평균 지원액 6053억 원의 14% 수준이다. 지난 10월 말 기준 지출액은 405억 원으로 지난해 지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조성된 기금만해도 4000억 원에 가깝지만 20% 밖에 사용하지 못하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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