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특수은행]성인병 걸린 인사·조직…해결책 있나[수출입은행③]인력 '비대'..조직 전문성 보강 절실
안경주 기자공개 2015-12-31 09:35:00
이 기사는 2015년 12월 30일 10: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출입은행이 내년이면 40주년이다. 그런데 인력과 조직 운영을 보면 성인병 위험에 빨리 노출된 것 같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당분한 수출입은행의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한다."최근 만난 부장급 직원은 현재 수출입은행의 인사와 조직을 '성인병'에 비유했다. 성인병을 일으키는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이 잘못된 식습관에 있는 것처럼 40주년을 앞둔 수출입은행도 여신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조선·플랜트 등 특정 산업의 기업에 집중하다 문제가 커졌다. 커진 몸집에 비해 인사제도와 조직구성은 강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산업 구조조정이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채권은행으로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 수은이 되레 스스로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력 증가했지만 비효율적 운영
수은은 2010년부터 올해까지 393명의 신입직원을 뽑았다. 이 중 2012~2014년까지 3년간 280명을 집중 채용했다. 이에 따라 수은 총 직원(정원) 수도 2010년 657명에서 올해 말 950명으로 300명 가량 증가했다.
신규 채용이 증가한 시점은 수은의 자산 증가 시점과 맞물린다. 자산의 급격한 증가로 생긴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수은의 총여신 규모는 2010년 64조3410억 원에서 2014년 106조2335억 원으로 급증했고, 올해 8월 말 기준 121조8368억 원으로 2배 가량 늘었다.
신규 채용을 늘리면서 인력은 증가했지만 업무 선진화는 답보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호황을 누리던 조선산업과 플랜트산업에 집중적으로 여신을 지원했다. 보통 시장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특정 업종이 호황일 때 불황을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수은은 자산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리스크관리 보다 여신 확대가 우선시되는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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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사례가 조선사에 대한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 사례다. 수은은 호황기에 있던 조선업에 집중 여신을 공급하면서 RG발급 수수료를 25bp로 낮췄다. 당시 산업은행의 RG발급 수수료가 50bp 였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낮은 조달 금리를 활용, RG발급을 독점하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수은 한 관계자는 "인력이 증가했지만 목표실적도 높아 업무 강도가 셌다"며 "사실상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업무에 올인하면서 한 산업에 집중되는 현상을 자초했다"고 자조 섞인 평가를 했다.
인력 배치엔 일부분 비효율이 묻어났다. 기업금융본부를 신설하면서 수출금융과 기업여신 업무 관련 인력만 늘렸을 뿐 리스크관리나 구조조정 부서엔 인력 배치가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수은의 인력 배치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자율성 부여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은의 업무는 크게 수출금융(기업여신 포함), EDCF, 남북협력 등으로 나뉜다. 이 중 EDCF의 경우 기획재정부에서 정원(현재 남북협력 사업 포함 200명)을 정해놨다. 업무량의 미스매치가 발생하더라도 수은이 적절한 인력 배치를 할 수 없는 이유다.
◇전문성 보강 절실…이덕훈 행장 '무거운 부담'
국내 특수은행의 고질적 문제는 정체된 성장 욕구와 보수적인 직장 가치관이다. 수출입은행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력 증가로 조직이 커졌지만 '활력'보다는 '안주' 분위기가 팽배했다. 비슷한 시기 시중은행 임직원들이 무한 경쟁에 내몰리며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전문성을 키우려 했던 문화가 확대된 점과 대비된다. 한 수은 직원은 "정해진 근속 연수를 채워야 승진 대상이 되다 보니 굳이 실적을 내거나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기 어려운 문화가 있다"고 토로한다.
모뉴엘이나 우양에이치씨 부실화는 수은의 이런 정체된 조직에 경각심을 줬던 대표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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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고위 관계자는 "히든챔피언과 같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여신을 지원하면서 심사 및 리스크관리 능력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업무를 시작해야 했는데 무작정 추진한 감이 있다"며 "결국 문제가 터졌다"고 말했다.
전문성이 보완되지 않다보니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기업 여신, 특히 조선·플랜트 부문에 익스포저 편중 현상이 일어났고, 과중한 부실로 건전성 악화가 발생하게 됐다는 지적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지적된 수은의 해결 과제다. 추가 부실을 막기 위해 오히려 다시 여신을 집중해 주는 악순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대우조선, STX조선, 성동조선이 대표적 여신 부실화 기업이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사진)은 무거운 부담을 안고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이 행장이 조직을 장악하고 강한 추진력으로 위기를 돌파한다면 수은의 달라진 위상을 만들 수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수은의 미래도 암울해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행장이 수은 조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직개편과 인사 등을 하면 힘들어질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수은도 할 말은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나 중점 영역도 바뀌면서 비효율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수출금융 공급을 주목적으로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수출금융 지원의 효력이 줄어들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으로 새로운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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