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특수은행]'산은·기은·무보'와 역할 중복…힘겨운 생존[수출입은행④]일원화 논의 무산…신사업도 겹쳐
안경주 기자공개 2016-01-05 15:07:01
이 기사는 2016년 01월 04일 09: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책금융기관 간 협조·조정 곤란으로 업무중복이 발생해 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간 업무중첩은 여전하다."(류성걸 새누리당 의원, 2015년 10월1일 수출입은행 국정감사)정부가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조정에 나섰지만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 중 수출입은행(이하 '수은')과 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의 업무 중복 문제는 매년 제기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류성걸 의원은 "녹색산업지원, 문화컨텐츠 분야 지원, 글로벌 강소기업 지원, 해외투자 지원 등 분야별 지원사업에서 유사 업무가 중복 추진되고 있다"며 "수은과 무보 간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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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정감사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업무 중복 사례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을까. 대외채무보증 업무 중복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2013년 8월 발표한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에서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기준을 낮추면서 업무 중복이 심해졌다.
기존에는 수은의 대외채무보증 기준을 '수은 지원 규모가 1억 달러 이상이고, 이중 대출비중이 55% 이상인 거래'로 한정했다.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에 따라 1억 달러 이상 규정을 삭제하고 대출비중 조건도 55%에서 50%로 낮췄다.
무보의 대외채무보증 업무인 중장기수출보험은 무보 보험료 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향후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수은과의 업무 중복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수은과 무보 뿐만 아니라 수은과 기업은행, 수은과 산업은행 등으로 비교하면 중복된 업무는 더욱 늘어난다. 수은과 기업은행은 각각 해외진출과 중소기업 수출 지원에 나서고 있고, 업무 중복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확대 등에 따라 업무중복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이렇게 첩첩이 중복된 업무는 수은의 고유 업무 영역을 희석시켜 존재감을 해가 갈수록 감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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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은 2015년 9월 국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온렌딩 업무를 도입했다. 온렌딩은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개금융기관이 기업을 선정해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수은은 2015년 연말까지 750억 원 가량의 실적을 낼 것으로 내다봤다. 2016년 목표는 1조 원이다.
문제는 온렌딩은 과거 정책금융공사의 주요 업무로 산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산은은 수은의 온렌딩 사업이 자신들의 업무와 사실상 중복된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고 있다.
수은은 산은과 업무적으로 겹칠 부분이 거의 없다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은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해외법인 및 그 해외법인과 거래하는 외국기업을 상대로 금융지원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온렌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은이 2016년 온렌딩 지원금액을 대폭 늘려 사업을 추진하기로 해 언제든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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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의 경우 기존 수은이 주로 담당해 왔으나 산은이 뛰어들어 경쟁관계가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산은 역시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중복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수은 입장에서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사한 지원 제도도 적지 않다. 수은의 대표 중소·중견지원 프로그램인 '히든챔피언' 제도는 산은의 'KDB글로벌 스타', 기은의 '수출강소기업 플러스500', 무보의 'K-sure 글로벌성장사다리' 등의 제도와 유사하다.
정부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한 지 불과 2년도 안돼 또다시 업무(역할) 중복 문제가 불거진 것은 부처 이기주의와 정치 논리에 밀려 '땜질식'으로 진행되면서 어정쩡한 방안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예컨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 수립하면서 정부는 원래 무보의 일부 기능을 수은으로 넘겨 대외정책금융 창구를 일원화할 계획이었으나 부처 간 이견으로 무산됐다.
금융당국은 수은과 무보를 통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은행업·보험업은 서로 다른 방식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므로 통합 운영은 불가하다"며 "통합시 단기적으로 수출금융 지원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수은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무보를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서로 산하기관 축소를 원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매년 정책금융기관의 업무 또는 역할 중복을 문제제기 하지만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고 비켜나가고 있다"며 "정책금융기관들도 생존본능 때문에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중복 문제가 심화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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