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법정관리, 뜨거운 책임론 공방 장밋빛 전망 근거 자율협약 추진…채권단 엇박자로 구조조정 시기 놓쳐
안경주 기자공개 2016-05-27 11:28:55
이 기사는 2016년 05월 27일 08: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을 받던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세계적인 조선 경기 불황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에선 채권은행의 의견을 배제한 채 자율협약을 추진해 온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자초한 실패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STX조선 채권단은 25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채권단 실무회의를 열고 "5월 말에 부도발생이 불가피하고 자율협약 지속에 따른 명분과 실익이 없다"며 STX조선의 법정관리를 선언했다.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외적인 환경이 악화되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다른 채권은행의 지적을 무시한 채 실사보고서의 장밋빛 전망만을 믿고 자율협약을 무리하게 끌고 나가면서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통상 자율협약 등 구조조정을 진행할 때 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업황 전망과 유동성 지원 규모 등을 결정한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2013년 안진회계법인을 선정, STX조선 실사를 진행했다. STX조선 지원방안은 안진회계법인이 제시한 방안이 그대로 반영됐다.
문제는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선업황의 현실을 배제한 채 장밋빛 전망만 실사보고서에 반영됐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등은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로 선박 수주 전망 자체가 불투명해졌다고 지적했지만 이런 입장은 실사보고서에 반영되지 않았다. 국가 기간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밀린 탓이다.
1년 후인 2014년 3월 무리한 자율협약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채권단에게 다시 찾아왔다. STX조선의 추가 부실이 드러나면서 1조8000억 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특히 우리은행은 반대매수를 청구하면서 채권단 탈퇴 시도를 했으나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으면서 무산됐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미 한 차례 실사에서 부실을 찾아내지 못한 채 조선업황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안진회계법인의) 실사결과를 토대로 자금지원을 결정하지 못했다"며 "반대매수를 청구하고 채권단에서 빠지고자 했지만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채권단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채권단에서 빠졌다면 신한·국민은행 등 타 은행 역시 채권단을 탈퇴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채권단 주도의 자율협약이 무산되면서 법원 주도의 구조조정(법정관리)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였지만 금융당국의 실력행사에 좌절되면서 또 한 차례 실기를 하게 된 것이다.
A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실사보고서의 장밋빛 전망만 믿고 유동성 지원에 동의할 것을 강요했다"며 "결과적으로 '더 이상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는 장밋빛 전망만 믿고 자금지원을 되풀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계법인의 잘못된 전망에 기반한 실사보고서를 그대로 믿고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하면서 STX조선 구조조정이 꼬이게 되고, 구조조정 실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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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채권단 내 이해관계가 달라 STX조선, 특히 중소 조선사 정상화의 기회를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초 일부 채권은행 주도로 논의됐던 'STX조선-성동조선 합병', '성동조선-SPP조선 합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STX조선, 성동조선, SPP조선 등 중소조선사 대부분이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합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온 것이다. 일각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긍정적인 시각이 더 많았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주요 채권은행 간 실무자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없던 일이 됐다.
성동조선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추가 자금 지원 등을 이유로 STX조선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 산업은행은 성동조선의 비즈니스모델이 STX조선과 적합하지 않아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속내를 보면 이해관계에 따른 알력 다툼이 컸다.
B은행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경험이 적은 수출입은행 주도의 성동조선 정상화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수출입은행은 조선업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소문이 채권단 내에 파다했다"며 "합병이 실제로 진행됐으면 STX조선 구조조정이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채권단의 부실을 키우지 않고 STX조선 경영정상화를 꾀할 수 있는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치면서 법정관리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조선경기 침체 장기화를 주요 이유로 들 뿐 이 같은 지적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013년 자율협약 개시와 지난해 자율협약 유지를 결정했을 땐 조선업황의 턴어라운드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불가피하게 법정관리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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