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2월 23일 09: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판도라'를 두고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말들이 많았다. '판도라'는 한 해안가 마을에 있는 원전이 지진으로 폭발한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다.영화 속에서 그려진 정부는 국정 혼란을 핑계로 원전 사고를 은폐하고,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이런 반정부적인 내용 탓에 벤처캐피탈들이 투자를 부담스러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분위기가 투자유치 과정 내내 이어졌고 개봉 직전에 가서야 일부 업체가 투자에 나섰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판도라'의 엔딩 크레딧에는 투자사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다. 크레딧에는 출연진과 스태프는 물론이고 영화 제작에 사소한 도움을 준 사람과 기관까지 모두 나온다. 그런데 하필 투자사의 이름이 빠진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머지 벤처캐피탈들이 판도라에 투자를 하지 않은 이유가 반정부적인 내용 때문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영화 제작비 규모가 꽤 큰 수준인데다 최근 극장가의 분위기는 예년에 비해 썰렁한 편이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손익분기점 달성이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정치적인 상황 탓에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는 것은 벤처캐피탈의 독립성 측면에서 분명 큰 문제다.
이런 투자사들의 '자체 검열'은 영화 제작 및 투자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문화콘텐츠 업계에서 영화 시장은 벤처캐피탈의 공로가 확실히 인정 받는 분야다. 대형 배급사 입장에서는 자금력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벤처캐피탈 등 외부의 투자가 없다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제작 일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탈이 후방 지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최초의 한국형 좀비 영화인 '부산행'도 벤처캐피탈의 투자로 제작이 순조롭게 마무리된 사례다.
문화콘텐츠에 사회 비판의 메시지가 담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문화콘텐츠에는 그 당시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자금이기 때문에 정부 비판적인 문화콘텐츠에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는 시대착오적이다. 문화 산업이 다양성을 갖추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투자사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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