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11월 08일 15: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요 대기업 공익재단의 절반 이상은 오너 일가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총액 상위 20개의 경우 총수와 계열사 임원을 제외한 외부 인사가 이사장에 등재된 재단은 단 두 곳에 불과했다.

오너 영향력이 절대적인 대기업에서 출자해 만든 재단이란 점에서 오너 이사장은 불가피한 면도 있다. 하지만 재단의 의사 결정 구조에 오너 영향력이 크다면 재단 운영이 '공익'이 아닌 '사익'에 치우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상위 20대 재단 중 60%, 오너가 이사장 맡아

더벨은 국내 63개 기업이 운영하는 100대 공익재단 중 자산 총액 상위 20대 재단의 이사장 현황을 분석했다. 총 13개 대기업들이 자산총액 상위 20개 공익재단을 두고 있으며 이들 재단 가운데 60%인 12개 재단은 그룹 오너들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나머지 5개는 계열사 대표와 전직 임원들이 이사장을 맡았고 나머지 3개 만이 기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외부 인사였다.

투명성이 강조되는 공익재단의 특성상 운영을 전담하는 이사회 멤버는 출연 기업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외부 인사들로 채워진다. 이사장이라고 해서 독단적으로 재단 운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다만 재단 설립이 이들 대기업 오너와 주력 계열사의 출연으로 이뤄지는 만큼 예우의 의미로 오너 일가를 이사장으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이사와 감사 등을 포함해 12명의 이사진이 의사결정을 한다. 공익재단의 경우 대부분 의사결정은 만장일치 형식을 띠게 된다. 다만 묵시적으로 이사장의 의견을 재단 운영 과정에서 참조하고 의견을 구하곤 한다.

이사장의 의견을 독단적으로 관철할 순 없지만 이사장의 의지를 어긋나는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더욱이 공익재단은 이사회를 통해 모든 사안을 결정하지 않는다. 일부 재단의 경우 2~3년에 한차례, 많아야 1년에 2~3회 가량 이사회를 연다. 통상적인 업무는 사무국에 일임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사장 및 사무국의 의중이 재단 운영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외부 인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하는 경우도 일부 있다.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는 아산나눔재단의 이사장은 전 숙명여대 총장이자 장학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경숙 씨다. 또 한진그룹의 정석물류학술재단도 법조인 출신으로 한진해운 사외이사를 역임했던 유경희 변호사가 이사장이다. 외부인사를 이사장으로 둘 경우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는 더 낮아진다. 현대중공업이 출연한 또 다른 재단인 아산사회복지재단은 정몽준 대주주가, 한진의 또 다른 재단인 정석인하학원은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재단 대부분 계열사 지분 보유…주요주주도 상당수

공익재단의 계열사 지분 보유는 결과적으로 오너를 지원하는 작용을 한다. 주요 공익재단은 대부분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총액 상위 20개 재단 가운데 18개가 해당 기업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재단 중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곳은 LG그룹 LG상록재단과 태광산업 세화예술문화재단 두 곳에 그쳤다. 하지만 LG그룹과 태광산업은 각각 다른 재단(LG연암학원, LG연암문화재단, 태광일주학술문화재단)을 통해 계열사 지분을 일부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사실상 모든 대기업 공익재단이 계열사들과 지분 관계로 얽혀있었다.

공익재단은 출연금을 활용해 자산을 증식, 공익 목적에 사용한다.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해당 주식의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증대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너의 계열사 지배구조에 도움을 주는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에 공익과 사익의 경계선에 놓은 셈이다.

지분 규모는 재단별로 천차만별이었으나 일부는 주력 계열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자산 총계 2조 1000억 원으로 재단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큰 삼성생명공익재단의 경우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1.05%,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지분 2.18%를 각각 보유했다. 삼성문화재단 역시 삼성전자(0.03%)와 삼성물산(0.6%), 삼성SDI(0.58%), 삼성생명(4.68%) 등 지분을 소유했다.

LG그룹의 LG연암학원도 ㈜LG와 LG상사 지분 2.13%, 0.04%를 소유했다. LG연암문화재단도 ㈜LG와 LG화학 지분 0.33% 0.03%를 각각 보유중이다. 재단 규모 상위에 랭크된 현대중공업 계열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대중공업( 2.52%), 현대미포조선(0.43%)의 주주였으며, 아산나눔재단도 현대중공업(0.64%)과 현대오일뱅크(0.24%), 현대백화점(0.1%)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차정몽구재단도 현대글로비스 지분 4.45%와 이노션 지분 9%를 각각 보유했으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롯데장학재단의 경우 무려 9개 계열사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롯데칠성음료(6.17%)와 대홍기획(21%)은 주요주주로 등재될 정도로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었다.

제약회사 녹십자의 공익재단인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지배기업인 녹십자홀딩스의 2대주주로 등재돼 눈길을 끌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율은 9.79%에 달해 단일 최대주주인 허일섭 회장 지분율(11.66%)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