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황무지에 피운 '설계 꽃'…미완의 후계구도 [전환기 엔지니어링업]①'철도기술사 공무원' 전긍렬 회장 창업, '50년 장기경영' 명암
김경태 기자공개 2017-12-08 08:54:44
[편집자주]
엔지니어링은 기술 기반의 설계 산업이다. 본격적인 건설 공사에 앞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기술 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산업이지만 정작 건설업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주요 수익원이었던 사회간접자본(SOC) 발주가 줄어드는 등 전환기를 맞고 있다. 더벨이 베일에 가려졌던 엔지니어링 업체들의 현주소와 향후 행보 등을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17년 12월 05일 14: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에서 태어난 청년은 1945년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 토목과에 들어갔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과를 전공하면 징병 연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토목과 인연을 맺은 청년은 미군정청 운수부 기술서에 취직해 '철도기술사'로서의 전문 경력을 쌓아 나갔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인민군의 강요에 한강철교를 보수했고 서울 수복 후에는 부역자로 분류돼 흠씬 매를 맞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토목 분야에 종사하던 청년은 1966년 '유신특수설계공단'을 설립하며 업계에 족적을 남기게 된다.
전긍렬 유신(Yooshin Engineering Corporation) 회장(사진)은 건설 엔지니어링 업계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경영 활동을 시작한 지 5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 회장이 세운 엔지니어링 제국 '유신'은 꾸준히 업계 상위권에 자리매김하며 전통적 강자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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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출신이 세운 엔지니어링 제국, 해외까지 영역 확장
전 회장은 유신을 만들기 전까지 정부 부처의 토목 분야에서 일했다. 운수부, 교통부, 철도청 등에서 경험을 쌓았고 재단법인 철도기술협력회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 후 1966년 '기술 향상'과 '미래에 대한 도전'을 이념으로 유신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은 황무지였지만 유신은 특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발전에 일조해 왔다. 특히 1968년 국책사업인 경부고속도로 설계에 참여하며 국내 일류 엔지니어링 업체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유신은 도로와 철도 등을 비롯한 교통시설 분야 외에도 사업 영역을 점차 확장했다. 공항, 항만, 교량, 상·하수도, 도시계획, 지반공학, 터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또 감리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책임감리제도 시행 이후 국내 건설공사감리에 있어서 최다실적을 보유 중이다.
유신은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79년 리비아 우죠비행장 실시설계를 맡으며 비교적 일찍 해외 시장에 눈을 떴다. 이듬해에는 파라과이 철도 기본설계를 했다. 현재 종속기업으로 해외 법인은 없지만 베트남을 비롯한 10개국에 사무소 및 지사를 두고 해외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회장 1인 질주의 그늘, '미완'의 후계구도
전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의 거목이다. 정부에서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고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등을 선정하면 빠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 92세이지만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고 임기는 2019년 3월까지다. 유신의 최대주주로 여전히 지분을 틀어쥐고 있다.
전 회장의 정력 넘치는 활동은 유신의 성장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후계 승계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미래 체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이 중 장남인 전경수 서울대 공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가 유력한 후계자다. 전 교수는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교수를 지내며 대한교통학회장을 역임했고 세계교통학회(WCTRS) 이사, 동아시아교통학회장, ITS(지능형교통시스템) 세계대회 이사회 의장 등을 맡는 등 토목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전 회장은 2003년 전 교수에게 유신의 주식 63만 주 정도를 증여했다. 전 교수는 현재 지분율 23.27%로 2대 주주이지만 전 회장(25.24%)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향후 전 회장이 남은 지분을 물려준다고 하더라도 전 교수에게 경영 성과가 없다는 점이 후계 구도의 불안 요소다. 업계에 따르면 전 교수는 유신의 경영 상황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 교수는 단 한 번도 유신의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다. 경영 일선에서 거둔 성과가 전무하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또 전 교수가 이미 올해 69세로 고령에 접어들었다는 점도 후계 승계의 불확실성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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