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Money-Flix] 옛날에도 우릴 환장하게 했던 그것, '부동산'조선 말기 명당을 둘러싼 왕실과 외척간의 암투를 통해 그려낸 영화 <명당>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18-09-28 15:17:41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18년 09월 28일 13: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71년 9월 초, 한 일간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가 있는 광고가 게재됐다. '한강 맨션과 유사하나 건물간의 간격이 더 넓으며 단지 내 시설도 많은 개량이 있음.' 광고주가 대한주택공사였던 그 광고는, 후에 반포주공 1단지로 이름이 바뀐 '남서울아파트 1차'의 분양을 알리는 것이었다. 최근 반포주공아파트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인터넷에서 새삼 큰 화제가 됐다.1978년 8월 초 다른 일간지에 게재된 '영동 은마 아파트타운'의 분양공고도 역시 비슷한 시점에 화제가 되었다. 두 광고 모두 당시의 충격적인 분양가 때문이다. 반포주공은 32평형이 500만원대 초반, 42평형이 700만원 전후로, 분양면적 평당 약 17만원에 불과했다. 7년 후 분양한 은마아파트는 31평형 2092만원, 34평형 2339만원으로, 반포주공보다는 4배나 올랐지만 평당 68만원 수준이었다.
연평균 22%씩 무서운 상승세를 보인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같은 기간 동안 명목GDP가 연평균 33% 성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런 상승은 무리한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이후 40년간 벌어진 상황이다. 반포주공1단지 42평형의 지난 8월 실거래가는 37억원으로 분양면적 평당 8800만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초 분양가 대비 517배, 은마아파트의 분양가와 대비 129배 상승한 것이다.
은마아파트가 분양된 1978년부터 2017년까지 명목GDP가 약 69배 증대된 것과 비교하면, 반포주공1단지의 가치는 명목GDP보다 약 2배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른 후유증은 이미 우리가 몸소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이번 추석 연휴 온 가족이 모여 나눈 대화의 소재 중엔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불붙고 있는 부동산 과열현상과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이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이번 추석 시즌에 개봉한 영화 중에 이러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고찰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었다. 무명에 가까운 박희곤 감독이, 조승우, 지성, 김성균, 백윤식, 문채원 등의 스타군단을 데리고 만든 <명당>이다. 개봉 전부터 제작사인 주피터 필름의 <관상>(2013년), <궁합>(2018년)에 이은 역학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것 때문에 관심을 끌기도 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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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나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명당>이 작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쉽게 눈에 띈 것은 명당 자리를 찾는 외척 김좌근(백윤식 분)에게 지관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땅으로 헌릉과 서리풀 등의 지역을 추천하는 장면이다. 현재 서초구 일대를 노골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관객들을 몰입시키려는 장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땅과 집에 대한 관심이다. 영화 초반 곁다리로 등장하는 조선의 백성들부터 그렇다. 그들은 아이들의 교육, 가문의 성공, 상권의 회복 등 작금의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땅에 관심을 보이고 집을 구매하는 이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핵심은 역시나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왕실과 외척들이 보이는 땅, 특히 명당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부와 권력을 후대에 안전하게 물려주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고 믿는 명당이라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들은 처절하게 싸운다. 문제는 그들의 명당에 대한 집착이 너무 과도하게 설정되어, 백성들의 사례와는 달리 관객들이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풍수라는 소재의 매력이 사라진 자리에는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탐욕과 권력을 향한 암투만이 남았다."는 한 평론가의 평가에 공감하는 이가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아무리 풍수를 중히 여긴다 해도, 헌종(이원근 분)이 영화 내내 부친인 효명세자의 능에 집착하여 대소 신료들과 충돌하기만 하는 설정은 아무래도 과도해 보인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그러한 과도한 설정 자체가, 작금의 우리 모습을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면도 분명 있다. 다양한 국정 현안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과열이라는 이슈에 정부는 물론 개개인들도 너무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효과가 불분명함에도 처절하게 '묏자리 배틀'에 목숨을 거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불합리한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단기적인 대증요법보다는 부동산 정책 기조의 대전환에 대해 충분하게 검토하고 토론한 후, 그 결과를 강력하게 실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그마나 우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인 것이다.
나무위키 영화 <명당> 항목: https://namu.wiki/w/명당(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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