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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SK이노 배터리 분쟁]'본질'은 지재권 보호, 외부 개입 말아야 한다"소송 결과 기다리는 게 가장 깔끔"…CEO 만남, 사전 합의 시그널?

박기수 기자공개 2019-09-09 10:44:21

이 기사는 2019년 09월 06일 14: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분쟁이 발생한 근본적인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조명받고 있다. 열 차례에 가까운 입장문이 오고 가며 주장과 반박이 꼬리를 무는 양상이 이어졌지만 양 사의 근본적인 분쟁 지점이자 LG화학이 주장하는 사건의 본질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경력직 영입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LG화학의 영업 비밀을 캐내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느냐'에 대한 여부다.

◇"소송 결과 기다리는 게 가장 잡음 없다"

이를 가리기 위해 LG화학은 지난 4월 29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International Trade Center)와 델라웨어주 연방 법원에 SK이노베이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SK Battery America)을 제소했다.

한 법학대학 교수는 지식재산권 침해 관련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가장 깔끔한 방법은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지식재산권 침해 관련 소송은 따져봐야 할 사실관계도 많고 법적 조치 또한 내려지기까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면서 "당사자들의 주장이 당연히 엇갈리기 마련이기에 권위 있는 기관의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분쟁 해소의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분쟁 역시 마찬가지라는 평가다.

이 교수는 "양 사의 분쟁 포인트인 인력 유출을 통한 지식재산권 침해 역시 유출된 인력이 어떤 영업비밀을 유출했는지, 해당 영업비밀들이 LG화학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는 정도인지, 유출된 영업비밀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에 얼만큼의 기여를 했는지, 지식재산권 침해가 직업 선택의 자유 보다 우선시돼야 하는 상황인지 등을 다 따져봐야 한다"면서 "소송은 무기가 아닌 잘못 여부를 가리는 중립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양 사의 분쟁을 잡음 없이 해결하는 방법은 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질

◇신학철-김준 만남, LG화학 의도대로 되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LG화학이 굳이 '미국 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이유다. LG화학이 국내 법원이 아닌 증거개시(Discovery) 절차가 존재하는 미국 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것을 두고 '영리한' 판단이었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나온다.

증거개시절차는 법정에서 사실심리의 진행 이전에 시행되는 절차로, 원·피고는 서로 요구하는 문서와 데이터 등을 전면적으로 제출한다. '실체적 진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영미법 체계에서 이를 위반할 시에는 재판 결과에 치명적 결과를 낳게 된다. 요구하는 증거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간과 노력도 그만큼 많이 들게 된다. 응당한 노력이 없으면 징벌적 배상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 소송의 당사자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특히 피고 측인 SK이노베이션) 모두 부담이 상당한 셈이다.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증거개시절차가 포함된 소송의 대부분은 양 당사자의 합의를 통해 심리 이전 종결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 법원 특유의 증거개시절차는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한 요건"이라면서 "막대한 양의 증거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면서 시간적·금전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ITC 소송 자체가 SK이노베이션에 부담이 되는 것은 맞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업계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발주자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LG화학의 ITC 소송은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명분과 SK이노베이션의 추격을 막는 실리를 모두 챙겼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추석 연휴 이후 양 사간 최고경영자(CEO)들 간의 회동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LG화학의 의도가 '먹히고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LG화학은 소송에 자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추석 명절 이후에 만난다고 하더라도 극적 화해가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면서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양 사간 CEO들의 만남은 소송 시작 전 사전 합의 단계로 볼 수 있어 LG화학이 증거개시 절차를 활용한 보람이 있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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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LG화학 부회장(왼쪽),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외부 개입, 본질 훼손 염려"

양 사간 분쟁에서 가장 큰 변수는 외부의 개입이다. 당사자들끼리의 합의와 외부의 개입으로 이뤄지는 합의는 이야기 자체가 다르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발 수출 규제 등으로 '국내 기업끼리 뭉쳐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으며 두 기업이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라는 시선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나서거나 정부가 나서 합의를 보라는 요구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렇게 될 경우 실제 지식재산권 침해가 있었는지 등을 따져볼 수 없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며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과정에서 외부 개입으로 소송 자체가 유야무야될 경우 LG화학만 억울한 입장이 된다"고 말했다.

외부 개입으로 소송 자체가 없던 일이 될 경우 향후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국내 법인끼리, 혹은 국내 법인과 해외 법인끼리 비슷한 내용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항상 외부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 법학대학 교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 생태계에서 최근 불거진 양 사간 분쟁은 지재권 침해와 직업 선택의 자유 중 어떤 것이 우선시돼야 하는가의 척도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면서 "외부의 불필요한 개입이 발생해 '좋은 게 좋은 것' 식의 결말이 날 경우 향후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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