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파장]증권사 'ELS 마진콜'에 원화 자금시장 '마비'외화 증거금 마련 목적 CP매도 '폭탄'…업계 "당국차원 외화 유동성 제공 시급"
최필우 기자공개 2020-03-20 07:59:45
이 기사는 2020년 03월 20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파생결합증권(ELS) 자체 헤지 증권사들이 외화 마련을 위해 기업어음(CP)을 대거 매도하면서 원화자금 시장이 사실상 마비됐다.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ELS 헤지를 해놓은 파생상품에서 마진콜 리스크가 부각, 증권사들은 증거금 추가 확보를 위해 외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파생상품 계약을 대부분 해외 금융회사들과 체결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당국 차원의 외화 유동성 공급 없이는 원화자금 시장 정상화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자체헤지 규모 30조 추산, CP 매도 행렬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ELS 자체 헤지 규모가 큰 대형 증권사들이 지속적으로 CP를 매도해 외환을 확보하고 있다. 몇몇 증권사의 경우 매거래일 외환으로 추가 납부해야 하는 증거금이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외국계 증권사에 헤지 운용을 맡기는 백투백헤지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대형사들은 자체 헤지 북을 운용하고 있다. 자체 헤지는 증권사가 국내외 거래소에 증거금을 맡기고 파생 거래를 통해 수익을 쌓아 나가는 비즈니스를 뜻한다.
문제는 코로나19 파장으로 ELS 헤지 운용 핵심 기초자산인 S&P 500과 유로스톡스 50이 폭락하면서 발생했다. 선물 거래소는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증거금율을 높여야 한다. 유로스톡스50 선물은 유렉스, S&P 500 선물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고 있어 자체 헤지 운용사들이 외화로 증거금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외화로 증거금을 추가하지 못하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된다.
증권사는 상업은행과 달리 외화가 넉넉하지 않은데다 외화 환전을 위한 원화를 마련할 수 있는 단기 조달 창구도 CP나 RP 시장으로 제한돼 있다. 전에 비해 국내 증권사의 ELS 자체 헤지 규모가 커지면서 CP 시장에 가해진 충격이 배가된 셈이다. 국내 ELS 자체헤지 규모는 최대 3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삼성증권이 자체 헤지 규모 10조원으로 가장 크고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뒤를 잇고 있다.
◇'CP 큰손' 연기금도 매도, 외국인 부재로 혼란 가중
여기에 CP 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몇몇 연기금의 대형 머니마켓펀드(MMF)가 CP 매도에 동참하면서 시장 혼란이 확대된 것으로 전해진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실물경제 악화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대형 증권사가 대거 매도에 나서자 연기금도 평정심을 잃었다는 평이다.
외국인의 원화시장 참여가 뜸한 것도 원화자금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볼커룰로 미국 대형은행의 프롭 트레이딩이 금지되면서 외국인의 원화자금 시장 참여는 과거에 비해 줄어든 상태다. 또 미국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어 트레이더들이 평소처럼 매매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혼란이 가중되는 와중에 대형 연기금이 CP를 대거 매도하면서 시장 수급이 완전히 꼬여 버렸다"며 "과거 같으면 시장 조정자 역할을 하던 외국인들이 물량을 받아줬을텐데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국, 직접 나서 원화시장 혼란 잠재워야"
증권업계에서는 당국이 ELS 자체 헤지 증권사들의 매도로 촉발된 현 상황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1조5000억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 매입을 결정했음에도 현 추세가 이어지면 CP 시장 마비가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1조5000억원으로 CP 시장까지 커버하는 건 무리라는 설명이다.
혼란의 트리거가 된 ELS 자치 헤지 증권사들의 외화 수요를 당국이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CP 매도와 외화 매입을 멈출 수 없어 별도의 조치 없이는 현 추세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채권을 증권사에 빌려줘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게 하고, 원화시장과 외화시장의 혼란을 먼저 잠재워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이 ELS 자치 헤지 증권사들에게 외화 유동성을 제공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될 것"이라며 "CP 시장을 주도하는 연기금도 현 시점에서는 시장 회복을 위해 대량 매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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