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리포트]쌍용차보다 더 떠는 '협력 부품사'2009년 악몽 재현 우려, 200여곳 실적· 재무구조 악영향 불가피
김경태 기자공개 2020-04-08 09:53:45
[편집자주]
최근 가장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 산업군이 자동차산업이다. 내연기관 차량의 글로벌 수요가 둔화하고 있고 친환경차 시대 진입 전 과도기 상황에서 로컬 뿐 아니라 글로벌 수요가 동시에 둔화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각종 환경 규제 등 다른 변수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카마게돈'이라는 말도 나온다. ‘격변기’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서 완성차업체들의 판매량과 실적에도 희비가 엇갈린다. 철강업체 등 유관 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기로에 놓인 자동차업계의 현주소를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0년 04월 07일 16:2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도 마힌드라(Mahindra)가 갑작스럽게 변심하면서 쌍용자동차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과 금융당국의 대규모 자금 지원이 없다면 유동성 위기가 불가피한 상태에 처했다.쌍용차가 벼랑 끝에 몰린 것도 문제지만, 더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린 곳은 협력 부품사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쌍용차와 거래하는 국내 부품사는 200여곳에 달한다. 이미 쌍용차에 대해 보유한 채권도 회수하기 어려울뿐더러 앞으로 거래가 끊기면 연쇄 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악몽 데자뷔, 협력사 200여곳 '초긴장'
자동차부품업계에 따르면 내연기관 자동차에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완성차업체들은 모든 부품을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력 부품사들과 협업한다. 쌍용차 역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거래하는 부품사가 있다. 이들과 사업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있는 만큼 쌍용차가 경영 위기를 겪으면 협력사들도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에 있었던 이른바 '쌍용차 사태'였다. 같은 해 8월초 국내 자동차부품사 600여곳으로 구성된 쌍용차 협동회 채권단이 법원에 조기파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협력사들은 파산신청서와는 별도로 우량 자산만을 모아 '굿 쌍용'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안도 법원에 제출했다.
일반적으로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완성차가 갑(甲)이고 부품사가 을(乙)이다. 그만큼 당시 협력사들은 위기에 몰렸고, 처절한 움직임을 보인 셈이었다. 쌍용차 노사가 구조조정안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협력사들도 조기 파산 신청을 냈던 것을 취소하기로 했지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악몽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에 쌍용차 협력사들이 초긴장 상태다.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마힌드라가 올해 초 밝혔던 2300억원 자금 지원을 철회하고 400억원 정도만 투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코로나19로 어려운 데다가 쌍용차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협력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국내 자동차부품사들의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는 매년 여름 업계의 현황을 조사한 자동차산업편람을 발간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9 자동차산업편람'에 따르면 쌍용차의 협력사는 2018년 227곳이다. 2017년 237곳이었는데 10곳이 줄었다. 꼭 쌍용차만의 협력사가 아니더라도 여러 완성차와 거래하는 부품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쌍용차의 경영 위기로 악영향을 받는 부품사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쌍용차, 만기 1년 미만 매입채무 약4800억…향후 정상화 과정서도 '험난'
쌍용차는 '반짝 흑자'를 기록한 2016년 이후 영업이익을 남긴 적이 없었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판매량도 급감한 상태다. 이미 장사를 해도 각종 비용 탓에 손에 쥐는 돈이 없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마힌드라가 2300억원 규모 자금 지원 철회 입장을 바꾸지 않고,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이 지원에 난색을 표하면 쌍용차는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다. 현재 쌍용차를 지탱하는 것은 영업 성과로 창출되는 현금이 아니라 금융사로부터 빌려온 차입금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갚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12월말 기준 쌍용차의 단기차입금은 2541억원이 있다. 이 중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은 900억원이다. 우리은행, 국민은행, BNP PARIBAS, 한국시티은행 등도 채권자다. 장기차입금은 1587억원으로 전년말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채권자는 산업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JP모간 등이다.
차입금 상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협력사들이 안심할 수 없는 부분은 매입채무다. 완성차업체의 매입채무는 대부분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협력사들은 이를 매출채권으로 잡는다. 쌍용차에서 매입채무를 지급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기간을 지연시키는 것만으로도 협력사는 타격을 입는다.
쌍용차의 지난해 말 별도 기준 금융부채 중 만기가 1년 미만은 8595억원이다. 이 중 매입채무가 477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금융사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은 2563억원으로 그다음이다. 미지급금 1884억원도 있다.
쌍용차가 극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아 당면한 위기를 넘기더라도 협력사들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협력사 수 감축 등 부품사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안을 실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약 20년 전 경영 위기를 겪던 일본의 닛산이 회생하는 과정의 이면에는 협력사들의 큰 고난이 있었다. 이른바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 Nissan Revival Plan)'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에 3년간 20%의 비용절감을 요구하는 동시에 부품·자재의 구매처를 절반으로 줄이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닛산의 협력사들은 큰 고충을 겪었다. 다른 완성차와 거래를 뚫는 등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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