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 빅4 빅뱅]현대차, 치밀하게 계산된 배터리 우군 확보전기차 핵심 배터리, 수직계열화 테두리 바깥…안정적 공급망 확보, 거래처 다변화 나서
김경태 기자공개 2020-07-21 08:07:46
[편집자주]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국내 경제를 이끄는 4대그룹 총수가 자동차 배터리 생산공장에서 연쇄 회동을 했다.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얼마나 뜨거운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수 있는 '바로미터' 이벤트였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산업 지형을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두고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그룹과 배터리 3사 간 협업과 동맹이 '코리안 어벤저스'로 진화해 미래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
이 기사는 2020년 07월 17일 14: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4대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협력은 각자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회동을 주도한 현대차 역시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내연기관차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부품을 직·간접적인 통제 범위에 뒀다.전기차 배터리는 수직계열화하지 못했고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대차로서는 상위권 배터리 업체와 긴밀한 관계 형성이 필요했다. 또 여러 곳을 우군으로 둬 거래처를 다변화하는 점도 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 추진…아산·정몽구 회장 시기 결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는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사업 구조를 단번에 보여주는 표현이다. 고 아산 정주영 회장은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사업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길 원했고 실력으로 증명했다.
최초의 한국 고유 모델로 평가받는 '포니'는 1975년 출시 때부터 85%의 부품이 국산이었다. 1981년에는 국산화율이 93%까지 올라갔다. 차의 심장인 엔진은 1991년 국산화를 해냈다. 아산은 자서전에서 엔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부품 국산화는 따라오는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는데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뤘다. 1995년 출시한 2세대 '아반떼'는 부품 국산화율이 99.9%에 달했다.
하지만 아산은 자동차 사업에서 완전한 수직계열화를 생전에 이루지 못했다. 이를 완성한 인물은 정몽구 회장이다. 정 회장은 2006년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에 착수해 1·2고로 건설에 6조2300억 원, 3고로 건설에 3조6545억 원을 투입했다. 1·2고로는 2011년 가동을 시작했고, 3고로는 2013년 9월 했다.
그는 3고로 기공식에서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한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배가시킬 뿐 아니라 조선, 전자, 자동차 등 국가 기간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 체제에서 현대차는 그룹 내 부품사뿐 아니라 외부의 협력사들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내연기관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을 사실상 전부 국산화했다. 이 덕분에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현대차그룹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악영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일본 부품 사용 비율이 1%에 불과했고 정상 조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기회로 삼아 흔들리는 일본 자동차기업 지위를 위협했다.
현대차는 내연기관차량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체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다른 협력사들보다 비교적 통제 범위의 바깥에 있던 부품사가 있는데 바로 타이어업체다.
국내에는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넥센타이어가 시장을 과점했고 부품사들과는 별도의 협회를 구성해 활동할 정도다. 그들에게도 현대차가 중요한 고객이었고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글로벌 완성차들과 관계를 맺었다.
현대차로서도 타이어업체를 크게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이어가 자동차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부품이기는 하지만 내연기관차의 심장으로 불리는 엔진만큼 중요 부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시장에 업체가 많아 품질 좋고 가격 경쟁력도 우수한 제품을 공급받기만 하면 됐다. 국내 3사 외에도 프랑스의 미쉐린, 미국 굿이어 등 쟁쟁한 기업들이 있다.
◇전기차 핵심 배터리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거래처 다변화 절실
각 차량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연기관차에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할 전기차는 훨씬 적은 부품이 들어간다. 전기차 분석업체 EV어댑션(Adoption)은 내연기관차 부품이 약 2만개인데 전기차 부품은 7000개라고 분석했을 정도다.
전기차 부품 중 가장 핵심적은 것은 단연 배터리다. 내연기관차로 따지면 엔진만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고 타이어처럼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기차 시대에 배터리는 타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품이라는 점이다.
정 회장은 이를 간파하고 고 구본무 회장과 의기투합했다. 두 총수는 2007년 북한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 자동차 시대에 관해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모비스가, LG그룹에서는 LG화학이 주주로 참여해 '에이치엘(HL)그린파워'를 설립했다. HL그린파워는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셀을 공급받으면, 배터리팩을 생산해 현대모비스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
하지만 LG화학에서만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받을 경우 문제가 생긴다. LG화학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상황에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현대차그룹은 곧바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 협력하는 과정에서 LG화학에 주도권을 뺏길 가능성도 있다. LG화학은 이미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체 중 1위에 올라섰을 정도로 시장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를 다변화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4대그룹의 협력을 요청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 단계에서는 4대그룹이 한데 뭉쳐 협력하는 것이 아닌, 현대차그룹이 다른 그룹과 각각 협업하는 수준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LG화학을 비롯한 3사가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배터리업체로서는 완성차 고객을 하나라도 더 잡아야 한다.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에서도 세계 5위 내에 있는 강자이기 때문에 손을 잡는 게 필요했다. 현대차도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을 위해 거래처를 늘려야 하는 과제가 있다. 잇단 수장들의 회동에는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기저에 깔려있다.
정 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제3의 장소에서 만나지 않고 직접 배터리 공장을 방문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해관계에 대한 치밀한 계산을 한 뒤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적절한 타이밍에 잇달아 방문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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