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승준 사장, R&D 한 우물 판 '제과 마이스터'⑤31년 경력 제품 개발 전문가, 글로벌 R&D 총괄 중책 맡아
박규석 기자공개 2020-08-24 08:29:55
[편집자주]
‘초코파이 정(情)’으로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제과업체로 우뚝 선 업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오리온그룹이다. 1956년 설립돼 창립 64주년을 자랑하는 오리온그룹은 현재 오너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한 인사 원칙으로 외부 수혈도 마다치 않는 모습이다. 허인철 부회장을 중심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오리온그룹을 이끄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8월 14일 07: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리온에는 제품의 연구·개발(R&D)을 위해 인생의 절반을 투자한 ‘제과 마이스터(Meister)’가 있다. 바로 글로벌연구소장 이승준 사장이다.1960년 생인 이승준 사장은 1989년 오리온의 전신인 동양제과 기술개발연구부로 입사해 31년간 제과 개발을 책임진 R&D 전문가다. 그는 인하대 생물학과와 연세대학원을 졸업한 뒤 오리온과 연을 맺었다. 이후 1998년 상품개발2팀 팀장을 시작으로 중국법인 연구소장 상무와 오리온 연구소장 부사장 등을 거쳐 현재 자리에 올랐다.
오리온에서 R&D 전문가가 사장까지 오른 것은 이 사장이 처음이다. 더불어 그는 전무 승진 후 불과 5년 만에 사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 사례로 기억된다. 현재 오리온에는 이 사장과 이경재 대표이사 사장 등 2명의 사장이 있으며, 이 대표는 상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7년이 소요됐다.
◇중국서 부활한 오리온 초코파이
2001년 오리온은 담철곤 회장이 취임하면서 R&D 경쟁력 강화를 통한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했다. 이듬해 중국 상하이 공장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중국 랑팡 2공장과 베트남 미푹 공장, 러시아 뜨베리 공장을 연이어 건설했다.
오리온은 1995년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중국에 많은 공을 들였다. 1997년 처음으로 준공된 랑팡 공장을 포함해 총 3개의 생산기지를 운용할 만큼 중국의 시장 가치를 높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오리온은 중국 공략을 위해 주력 제품인 '초코파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초코파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시멜로의 맛을 한국에서처럼 만들 수가 없었다. 초코파이에 사용되는 마시멜로에는 ‘전지분유(우유를 건조시켜 분말로 만든 뒤 첨가물을 넣지 않은 것, 이하 분유)’가 사용되는데 중국산 분유로는 초코파이 고유의 맛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리온 랑팡 공장 연구소장을 맡았던 이 사장 입장에서는 중국산 분유를 대신할 첨가물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중국산 분유 이외에 다양한 분유를 배합하며 초코파이 본연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산 분유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국내보다 월등히 높은 중국 공장의 생산량을 고려할 때 국내 물량만으로는 양 국가 모두에 공급 차질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식품업계에서는 공장 운용 시 원재료의 안정적인 수급과 원가 관리 등을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이 사장은 프랑스산 분유에서 나온 마시멜로 맛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그는 프랑스로 직접 건너가 해당 업체와 계약을 했고, 이 프랑스 공장에서 생산하는 분유는 중국 법인을 포함한 모든 국외 법인에 사용됐다.
제품 개발에 대한 이 사장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중국에서 근무한 2004년~2015년 사이 현지 소비자 입맛에 특화된 오!감자와 예감, 스윙칩 등의 스낵 메가 브랜드를 연달아 탄생시키기도 했다. 스낵 메가 브랜드란 단일 브랜드로 연간 1000억원 매출을 달성한 제품을 뜻하며, 이 같은 그의 공로는 오리온의 중국 시장 공략에 큰 보탬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맛’으로 정면 승부, 글로벌 R&D 구축
중국에서 스낵 메가 브랜드를 달성한 그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신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바나나 초코파이와 꼬북칩 등 히트상품을 개발하며 오리온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2017년 오리온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본격적인 채비를 했다. 이를 위해 각 국가별로 운영되던 연구소의 통합관리를 본격화했다. 각국의 연구소를 총괄하는 기술개발연구소 구축 작업은 오리온의 제과 마이스터 이 사장이 맡았다.
같은 해 그는 R&D 역량과 글로벌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법인이 헤드쿼터가 되는 연구기획팀을 신설했고, 연구전문직군 제도를 도입해 우수 연구 인력 확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술개발연구소는 올 3월 글로벌연구소로 개편되며 기능과 역할이 한층 강화됐다. 글로벌연구소 산하에는 현재 개발팀과 연구기획팀, 미래상품개발 1·2팀 등이 있다. 한국과 중국, 베트남, 러시아 연구소 등 4개 법인의 연구 인력만 100명이 넘는다.
평소 연구소 분위기를 ‘학습의 장’으로 주도할 만큼 배움에 관심이 많았던 이 사장은 연구소의 확대 개편과 더불어 연구 인력의 교류도 함께 진행했다. 본사 연구소 임원과 연구 인력을 중국·베트남 법인 연구소로 파견해 다양한 시장 특성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본사 연구개발 노하우를 중국과 베트남 연구소에 전수해 자체적인 R&D 역량을 성장시키기 위한 복안이었다.
오리온 관계자는 “이 사장은 사무실 돌아다니며 일반 연구원과 격 없이 대화할 만큼의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며 “남에게 일을 시키는 것보다는 본인이 직접 솔선수범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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