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모니터/SK이노베이션]배터리 전략 100% 힘 실어준 이사회①이사 평균 재직기간 3.9년, 배터리 관련 모든 안건 '찬성'
박기수 기자공개 2021-03-18 09:54:09
[편집자주]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 대기업은 개인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효율성만큼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더벨은 기업의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3월 16일 16: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이노베이션을 둘러싼 최근 가장 큰 이슈는 LG에너지솔루션(LGES)과의 영업비밀 침해 관련 소송전이다. 2019년 초 발발한 양 사간 분쟁은 약 2년이 흘러 최근 LGES의 승리로 판결났다.이제 관건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그에 따른 LGES와의 합의 전략이다. 이 순간에 SK이노베이션의 '이사회'가 나섰다.
사외이사들은 소송전에서 패한 경영진들을 질책하고 재발 방지를 주문했다. 더불어 과도한 합의금 지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사회 나름의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와 같은 '이사회 차원의 입장 표명'은 국내 재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곧 사외이사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독립적 이사회 경영 체제를 마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SK이노베이션 이사진들은 배터리 사업의 성장기와 개화기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봐오며 힘을 실어왔다.
SK이노베이션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2인과 기타비상무이사 1인, 사외이사 5인으로 구성돼있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관리자(CFO)인 김준 총괄사장과 이명영 부사장이 사내이사진을 이루고, 유정준 SK E&S 대표이사가 기타비상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외이사 5인의 경력들은 다양하다. 우선 이사회 의장인 김종훈 사외이사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 등을 지낸 '국제 외교 전문가'다. 2017년 3월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 참여해 2019년 3월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6년 3월에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 발을 들인 김준 사외이사와 하윤경 사외이사는 각각 재계와 학계 인물로 구분된다. 김준 사외이사는 대한방직협회 회장이자 현 경방 대표이사 회장이다. 하윤경 사외이사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화학 박사 과정을 밟고 현재 대한화학회 부회장, 홍익대 공과대학 기초과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2018년 3월부터 이사회에 참여한 최우석 사외이사는 현 SK이노베이션의 감사위원회 위원장이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경영학회 상임이사,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을 거쳐 현재는 고려대 회계학 교수로 있다.
최우석 사외이사와 함께 참여한 김정관 사외이사는 지식경제부 제2차관과 한국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등을 맡았던 인물이다. 현재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을 맡고 있다.
이사회 내 평균 재직기간 역시 사내이사들보다 사외이사진이 더 길다. 사외이사 5인의 평균 재직기간은 올해 3월 말 기준 4년이다. 사내이사·기타비상무이사진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3.7년이다.
현재 사외이사들은 배터리 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던 2010년대 중후반부터 배터리 사업을 100% 지원하는 행보를 보였다.
실제 이사회 안건으로 배터리 관련 이슈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현 이사진이 갖춰지기 시작한 2017년부터다. 서산 배터리 공장 증설부터 배터리 사업 성장 전략 등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유럽공장 부지매입과 'D', 'E' 'V'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터리 프로젝트, 미국 투자 등 SK이노베이션의 굵직한 배터리 전략이 모두 이사회 차원에서 논의되고 일부는 의결 과정을 밟았다.
김종훈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현 사외이사들은 배터리 관련 모든 안건에 찬성 의견을 보냈다. 공격적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사외이사들 역시 인지하고 회사 전략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회사의 배터리 중장기 전략에 사외이사들도 공감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앞서 언급됐던 LGES와의 합의 전략에 대한 사외이사들의 입장 역시 회사의 입장과 같은 궤도 상에 있다. SK이노베이션과 사외이사진들 모두 LGES가 요구하는 배상금이 과도할 경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사외이사들이 패소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아니다. SK이노베이션 감사위원회는 회사가 글로벌 분쟁 경험 부족 등으로 미국 사법 절차에 미흡하게 대처한 점을 강하게 질책했다고 전해진다.
또 내부적으로 글로벌 소송 대응 체계를 재정비함과 동시에 외부 글로벌 전문가를 선임하여 2중, 3중의 완벽한 컴플라이언스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것을 주문했다고 알려진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질책' 수준을 넘어서 추후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을 강화해햐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ITC 최종 판결문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고위층에서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The destruction was ordered at a high level and was carried out by department heads)는 내용이 나와있다"면서 "만약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킨 이러한 행위가 경영진들과 관련이 있다면 추후 관련자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사외이사들이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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