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5월 31일 07: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속가능채권을 설명할 때 녹색채권과 사회적채권을 합쳐놓은 SRI채권(사회책임투자채권, ESG채권)이라고 말한다. 친환경사업에만 사용목적이 국한된 녹색채권이나 사회적사업에만 조달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사회적채권과 달리 친환경사업과 사회적사업 둘다 쓸 수 있어서다.처음 지속가능채권의 존재를 알았을 때에는 발행사의 편의성이나 사회적 기여도가 높겠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SRI채권을 발행하고 싶은 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적격사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사업 패러다임을 대대적으로 전환하는 현대차그룹이나 ESG경영에 사활을 건 공기업 등이 아니고서야 녹색채권이나 사회적채권에 꼭 들어맞는 대규모 사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발행규모를 줄이면 연기금 등 대형 투자자를 유치하기가 힘들다.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하면 적격사업의 범위가 비교적 넓어져 편의성이 높아질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사회적 가치 제고 효과도 커진다. 그러나 업계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그렇게 순진하지도, 희망차지도 않은 것 같다.
지속가능채권이 실상 ‘위장 녹색채권’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무성하다. 발행 취지는 녹색과 사회적채권을 합친 SRI채권이지만 규제는 개별 SRI채권처럼 받고 있다.
환경부가 2020년 말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지속가능채권은 이런 규제를 따르지 않는다. 환경부와 산업부가 올해 하반기 녹색사업을 정의하는 K-택소노미(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마련할 계획이지만 지속가능채권은 이를 준수하지 않아도 규제받지 않는다. 분명 녹색채권의 성격이 있지만 사회적채권의 성격이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구멍이 된 셈이다.
당장 발행사들이 펴낸 사후보고서만 봐도 그렇다.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에 사후보고 양식을 예시까지 들어 세세히 기재했다. 특히 녹색채권의 환경 영향보고를 진행할 때 어떤 방법론과 가정을 사용해 이런 결과를 냈는지 적어야 한다고도 명시했다.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DGB금융지주, 삼성카드, IBK캐피탈, 현대캐피탈만 올해치 지속가능채권의 사후보고를 한국거래소의 사회책임투자채권 플랫폼에 올려뒀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맞춰 사후보고를 진행한 곳은 현대캐피탈뿐이다.
나머지 대부분 발행사는 아예 사후보고를 플랫폼에 올리지도, 형식을 맞추지도 않았다. 비단 이뿐이겠는가. 지속가능채권 상장잔액이 있는 기업은 모두 34곳에 이른다.
“그린워싱보다 우려되는 건 사회적채권과 지속가능채권 워싱이다” SRI채권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규제와 감시의 틀이 마련된 녹색채권과 달리 사회적채권과 지속가능채권은 관할정부부처도, 분류체계도, 가이드라인도 없다. '무늬만 지속가능채권'으로 SRI채권업계의 신뢰도에 금이 가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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